최병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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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고 재학생과 졸업생이 사회의 고졸 차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10년 일해도 대졸보다 낮은 직급이 계속 유지되는 게 불합리하다. 학력이 신분 돼선 안 된다”라는 주장이 요지다. 재학 중인 학생은 “인문계 학생들이 수능과 대입을 준비하느라 밤을 새워 공부할 때, 특성화고 학생들도 밤늦게까지 자격증 따기 위해 야간 실습도 하고 기능경진대회 공부도 했으니 노력이 비슷한데 단지 대학에 진학 안 했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으니 불공정하다”, 특성화고 졸업 후 취업한 학생은 “고졸이라는 이유로 차별적인 말을 많이 듣고 무시당하는 것 같아 회사 다니기조차 힘들다”라고 한다.

위 뉴스를 접하니 필자의 고교 시절이 생각난다. 필자도 지금의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 같은 국립 기계공업고등학교를 78년도에 진학했다. 당시 국립 기계공고는 전국에 5개 정도가 있었는데 ‘조국 근대화의 기수’인 기술자를 양성하는 목표로 개교해 학비가 무료였고 기숙사비만 냈던 탓에 경쟁률이 10:1이나 됐다. 중학교 내신 10% 이내의 학생만 교장 추천서를 받아야 시험을 볼 수 있어 전국에서 우수한 학생이 몰렸다. 단지 가난해 대학에 진학할 형편이 되지 않는 학생들이 기술자가 되면 대학졸업자와 비슷하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진학했다.

우리 학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낙하산으로 내려보낸 해군 장군 출신이 교장이라 학교 내 모든 시스템을 군대식으로 운영했다. 2년 이내 국가 기능사 자격증을 따야 해 인문계 학생들이 야자하는 시간에 야간 실습을 했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하는 학교라 저녁 10시에 군가를 부르며 점호 후 취침하고, 밤에는 불침번과 보초도 섰다. 새벽 6시에 기상해 아침 점호와 구보를 한 후 군대 식당처럼 식사하고 줄을 맞춰 군가를 부르며 등교했다. 기숙사 사감과 선배들의 구타, 쌀벌레가 둥둥 떠다니는 정부미로 지은 밥을 먹으며 2년을 고생해 정밀가공기능사란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을 따고 회사에 취직하면 대졸자 못지않은 대우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인문계 학생들이 대학에 합격한 것만큼 기뻤다. 하지만 3학년 선배들이 먼저 현장 실습을 다녀와서 하는 말은 충격이었다. “월급 타서 밥 사 먹고 속옷 한 벌 사니 남는 게 없다.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최씨! 대학을 졸업하면 최대리, 최과장으로 불린다”고 했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대학 대신 9급 공무원을 선택한 형도 “공무원도 대학을 안 나오면 평생 9급이다”라고 했다. 한마디로 멘붕이 와 대학진학을 결심했다. 3학년이 돼 기숙사를 나와 자취하며 3~4시간만 자며 1년간 독학으로 죽기 살기로 공부해 사범대학교에 진학해 교사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필자의 경험담은 지금의 특성화고 졸업생이 겪는 차별은 40년 전부터 있었다는 의미로 썼다. 그 차별을 견디느냐, 돌파하느냐는 결국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취업한 사원과 대학을 졸업해 취업한 사원을 같은 대접을 하면 그게 오히려 역차별이다. 특성화고 졸업생이 취업해 돈을 버는 시간에 그들은 4년간 대학에서 공부와 다양한 경험,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했고. 수많은 경쟁률을 거쳐 어려운 취업의 관문을 뚫고 회사에 입사한 사람이다. 학력이 차별인 사회는 잘못이지만 학력에 따른 능력의 차이는 부인하기 어렵다.

대학을 가지 않고 취업했던 필자의 고등학교 동기들은 회사 다니며 야간대학을 졸업하고, 재수해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표를 쓰고 창업해 큰 기업을 이끄는 사람, 심지어 국회의원도 있다. 능력에 따른 차별을 인정하고 그 차별을 돌파하기 위해 노력해야지 불평불만 한다고 사회가 알아서 변해주지 않는다. 고졸자가 4년 근무했다고 대졸자와 대우를 같게 해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내 스펙과 실력을 쌓아야 한다. 외국어, 기획안/보고서 작성, 프리젠테이션, 팀플레이, 인턴경력 등에서 단순히 대학 졸업 증명서를 가진 자가 아닌 치열한 취업경쟁에서 승리한 대졸자와 특성화고 졸업자의 능력 차이는 비교 자체가 힘들다는 건 회사 다니는 사람은 누구나 안다. 차별받고 싶지 않으면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보완해야 한다.

독일처럼 적성에 따라 대학에 30%만 진학하고 70% 학생은 직업학교에 진학하는 사회로 변하지 않는 한 학력에 따른 차별은 없어지지 않는다. 피켓 들고 차별 철폐하라고 외칠 시간에 실력을 길러 능력을 인정받는 방법이 더 현명하다. 고졸자라도 학벌의 차이를 뛰어넘는 능력을 보이면 학벌과 상관없이 성공할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지금 사회가 집단행동으로 비정규직이 갑자기 정규직이 되는 세상이 되다 보니 고등학생마저 피켓을 만능해결사로 여기는 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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