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연 통섭예술인
한 달 전에 도서관에서 열 권의 책을 빌려왔다. 반납일이 다가와서 책을 찾으니 그 중 한 권이 보이지 않았다. 암만 찾아보아도 작은 크기의 책인데 어디에 두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 아홉 권만 반납했다. 그런데 아주 우연히 장영희의 시집<생일>을 꺼내다가 그 옆에 같이 꽂혀있는 그 책을 발견했다. 사랑이 내게 온 날 나는 다시 태어난 것일까? 나는 갑자기 행복해졌다.

“나는 무엇 때문에 행복한가? 무엇 때문에 가슴이 설레는가? 무엇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가? 무엇을 감사하게 생각하는가? 무엇을 즐기고 있는가? 무엇을 결단하는가? 무엇을 사랑하는가?” 앤서니 라빈스는 이 같은 질문을 하면 활력을 얻는다고 했다. 하나의 가치가 생겨날 때마다 우리 존재는 새로운 의미를 하나 더 갖게 되기 때문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의 <귀천>처럼 이 세상은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행복해진다. 아름다운 질문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아름다운 대답을 듣는 법이다.

불교에서 부처의 가르침은 8만 4000법문이나 된다. 이는 사람들의 매우 다양한 수준이나 문제에 대응하는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원효는 <금강삼매경론> <대승기신론소>에서 동이론(同異論)으로 세상을 보라고 한다. 동이론은 ‘같은 것이 언제나 다른 것과 상감(象嵌)관계를 맺고서 존재해 잡종’이라는 의미다. 모든 사람이 타인을 만나면서 시시각각 변한다. 김형효 선생은 타자의 출현이 자아의 출현을 만든다고 했다.

그리고 도법스님은 <불교의 눈으로 본 미래의 창조적 인간>이라는 논문에서 이 법문들을 함축해 표현했다. 하나는 여실지견(如實知見, 지혜의 길) 여실지견행(如實知見行, 자비의 길)이다. 즉, “현실적으로 직면한 존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라. 그리고 그 내용에 따라 사고하고 말하고 행동하라. 그러면 삶이 편안하고 자유롭다”는 내용이다.

또 하나는 자작자수(自作自受)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는 말이다. “자신이 만든 것은 자신이 받는다. 자신이 행위하는 대로 그 삶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언제나 주체적이고 자립적이고 창조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두 가지를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면 언제나 내가 직접 법의 길을 가면 그 길을 가는 만큼 해탈열반이 나의 삶이 된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우리의 존재를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하였다. 천하에 가장 귀한 존재, 주체적인 존재, 완성된 존재, 창조적인 존재, 고마운 존재라는 말이다. 행복하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절대자나 절대 진리는 그 근본이 모두 하나다. 손을 보면 손바닥과 다섯 개의 손가락이 있다. 모든 종교란 손가락에 불과하며 그 최후의 종착지는 손바닥이다. 각 종교 지도자들이 모시고 있는 다양한 신이나 진리의 이름은 엄지나 검지 등 이름이 다른 손가락일 뿐 그 최후의 종착지는 같다.” 징키스칸의 손자 멍케칸의 깨달음이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원효대사는 불교의 진리를 비유해 “물이 장강 속에 있으면 강수(江水)라 하고, 물이 회수(淮水) 속에 있으면 회수(淮水)라 하며, 물이 황하(黃河) 속에 있으면 하수(河水)라 하나, 함께 모여 바다 속에 있으면 오직 이름하여 해수(海水)이니, 법(法)도 역시 이와 같아서 다 함께 모여 진여(眞如)에 있으면, 오직 이름하여 불도(佛道)일 뿐이다”라고 했다.

이는 통섭을 말하는 것이다. 자기와 다른 차이를 적극적으로 의도적으로 받아들이고 용인하는 게 진정한 소통이다.

최근 지인들과 원숙하고 행복한 사회를 위해 ‘통통통’이라는 통섭문화 그룹을 만들었다. 사랑이 충만한 가슴은 무엇이든 포용하지만 텅 빈 가슴으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포용을 위해 통섭과 소통이 필요하다.

우리는 싫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일과 하고는 싶지만 당장 할 수 없는 일로 갈등한다. 삶은 불행과 행복의 이중주이며 행복은 노력의 결과다. 골퍼 부바 왓슨은 사람은 리더가 되든지 졸병이 되든지 둘 중의 하나라고 했다.

결국, 선택이다. 소포클레스는<안티고네>에서 “세상에는 경이가 많지만 가장 찬란한 경이는 인간이다”라고 했다. 인간의 마음은 새로운 생각을 펼치면 절대 처음 자리로 되돌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가정의 달 5월에, 경이로운 우리들이 새로이 행복을 상상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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