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전해철 행정안전부,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 임명을 재가했다.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됐으니 곧바로 임명 절차를 밟은 것이다. 그리고 이번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많았던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도 결국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더라도 임명 시기가 다소 늦어질 뿐 대통령의 의중이 확고하다면 야당의 반대든, 여론의 비판이든 결정적 변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은 전해철 장관이 중요한 선거정국을 앞두고 어떤 소신을 갖고 있는지, 특히 국민의 안전과 관련해서도 어떤 구상을 가지고 있는지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전 장관의 정책비전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도 온통 변창흠 후보자에게 집중된 탓이 크다. 권덕철 장관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권 장관의 경우 지금의 코로나 정국에서 전문가적 역량이 있는지, 정책비전은 합당한지 국민의 관심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권 장관도 변 후보자에게 쏠리는 시선 때문에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국민의힘이 보여준 인사청문회에서의 검증 수준도 기대 이하였다. 쟁점도 찾기 어려웠으며, 주변적인 것에 시선이 분산되다 보니 핵심도 놓치고 말았다.

그렇다면 변창흠 후보자의 경우는 어떨까. 국토교통부의 경우 인사청문회는 역대 보기 드문 정책대결의 장이 펼쳐져야 마땅했다. 최근의 아파트 값 폭등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민을 ‘루저(loser)’로 만들어버린 정책실패의 상징이며 동시에 그 실패가 고스란히 민생의 고통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거의 ‘범죄’ 수준이다. 그 결과 혹자는 좌절하고 혹자는 ‘영끌’하고 또 혹자는 가족파괴로 이어지기도 했다. 온 나라가 아파트 값에 발목이 잡혀있는 상태에서 부동산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역대급 광기와 공포로 가득하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새로 장관을 교체하는 자리인 만큼 국민의 관심은 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변창흠 후보자는 직전까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 자리에 있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의 주범 가운데 한 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변 후보자의 정책실패가 무엇인지도 꼼꼼히 들여다볼 일이었다. 그리고 장관에 임명 된다면 향후 부동산 정책의 방향과 수단 그리고 장단기적 정책 목표 등도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그것이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한 취지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핵심은 비켜갔다. 대신 외부의 것들이 시선을 모았다. 구의역 참사에 대한 막말 논란이 주를 이룬 가운데 변 후보자 딸의 유학비, 여성들의 화장 발언에 대한 시비 등이 시선을 끌었다. 정작 이 보다 더 시급한 부동산 정책에 대한 대책이나 수단 등은 뒤로 밀리고 말았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태를 이렇게 만든 것은 국민의힘 책임이 크다. 인사청문회장 복도에서 변 후보자의 과거 막말을 비판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늘어선 모습은 한 편의 코미디에 다름 아니다. 그 비난이 적절치 않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 그런 손팻말로 사태의 본질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부각시키면서 제1야당의 부동산 정책 대안을 국민 앞에 내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 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안정당’을 향한 국민적 신뢰는 그렇게 구축되는 것이다. 그러나 변 후보자의 ‘막말’에 꽂히는 바람에 ‘정책’을 놓쳐버렸다. 아니 어쩌면 국민의힘도 부동산 정책의 ‘대안’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기회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튼 변 후보자에 대한 논란은 일단락 됐다. 정책도, 수단도, 대안도 명확하지 않다. 이번에도 국민의힘은 역부족이었다. 의원의 수가 아니라 능력 부족이 더 아픈 대목이다. 예상대로 문재인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할 것이다. 국민의힘이 펄펄 뛰겠지만 국민의 불편한 시선은 펄펄 뛰는 그들을 향할 수도 있다. 지금 뭐 하느냐고. 그리고 또 물을 것이다. 이런 인사청문회를 언제까지 봐야 하느냐고 말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인사청문회제도를 바꾸겠다고 말했다. 정책 중심의 인사청문회가 될 수 있도록 여야 협의도 수없이 반복했다. 지금도 예외가 아니다. 여야 의원들이 너도나도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힘을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여야 셈법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인물 때리기’를 통해 ‘정권 때리기’로 가려는 야당의 셈법은 정책보다 도덕성이 더 결정적이라고 본 것이다. 변창흠 후보자의 경우 정책보다 과거의 막말과 여성들의 ‘화장’ 논란이 더 부각된 이유라 하겠다. 반면 민주당은 인사청문회제도 개혁을 문 정권의 인사정책 실패를 물타기 하려는 꼼수로 보일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래저래 국민의 바람대로 바꾸기는 쉽지 않다는 뜻이다.

비록 정치가 세력에 흔들리고 이미지에 따라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정책의 힘’은 여전히 저변의 지지층을 결속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정책역량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불투명하게 보일 때 더 선명하고 구체적인 정책비전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누구든 당연하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야말로 ‘정책의 경연장’이 돼야 한다. 특히 야당의 목소리가 전 국민을 향해 ‘대안’으로 부각될 때 정당정치의 힘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인사청문회를 늘 이런 식으로 계속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도덕성 검증과 정책 검증 그리고 최종 임명방식까지 각 단위의 전면적인 개혁이 불가피하다. 여야의 유불리를 언급할 필요도 없다. 여야는 물론 후보자와 국민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지금의 방식은 결국 악화가 양화를 구축할 뿐이다. 정말로 품격다운 품격, 정책다운 정책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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