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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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북한이란 나라를 가리켜 ‘폐쇄의 왕국’이라고 부른다.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세계적으로 북한 출신 이주민은 11만여명에 달하고 난민 자격 탈북민은 700여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뿐만 아니라 통계가 어렵지만 현재 중국과 러시아 지역에 분포돼 있는 탈북민은 10만명 내지 30만명이란 설도 팽배하다. 몰래 국경을 넘어 자유를 찾아 탈출한 사람들을 일일이 계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에 대해선 북한 당국이 더 함구를 원한다. 왜? 책임질 수 없는 사람들이 ‘가난의 공화국’을 버리고 떠났지만 가라 오라 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북한 밖으로 나가 낳은 자녀들은 결국 반쪽은 또 북한 사람 아닌가? 아무튼 가슴이 찢어지는 안타까운 일이 오늘도 설한풍 휘몰아치는 북한 땅에서 동포들의 신음소리로 들려오고 있다.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ESCAP)가 ‘세계 이주민의 날’을 맞아 18일(현지시간) 발표한 ‘2020 아시아태평양 이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북한 출신 이주민은 11만 3121명으로 추산됐다. 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3년 전 북한의 해외 노동자 파견을 금지한 결의안 2397호를 채택했던 당시 해외 북한 노동자를 약 10만명으로 추정한 것과 유사한 수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북한 출신 해외 이주민은 1990년 3만 9784명이었으나 2000년 7만 2414명, 2010년의 9만 6575명을 거쳐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반대로 북한에 거주하는 해외 출신 이주민은 4만 9393명으로 추정됐다.

해외에서 난민 자격으로 거주하는 탈북민은 762명, 난민 지위를 얻으려고 신청한 뒤 대기하고 있는 탈북민은 124명으로 각각 집계됐다. 해외 유학 중인 북한 출신 학생은 2018년 기준 1364명으로 2014년의 1462명보다 오히려 100명가량 줄었다. 보고서는 북한을 포함한 일부 아시아 국가가 비정규 이주(irregular emigration)를 범죄로 못 박고 있어 자국을 포함해 어떤 국가든 떠날 수 있고 자국으로 돌아올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한 세계인권선언을 위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보고서는 아태 지역 전체에 거주하는 해외 이주민은 6500만명, 아태 지역 출신으로 해외에 거주하는 이주민은 1억 700만명이라고 추산했다. 보고서는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여파가 아시아태평양 지역 이주민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며 “이주민들은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이 더 크고, 의료서비스 접근 기회가 결여돼 있다”고 우려했다. 북한을 떠나 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은 그나마 행운아에 속한다. 그러나 정착의 언덕을 넘지 못해 모대기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1950년 한국전쟁 직전 귀순한 공군 장교를 시작으로 자유를 찾아 목숨 걸고 대한민국 땅을 밟은 탈북민의 역사는 어느덧 70년이 흘렀다. 통일부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국내 거주 탈북민은 3만 4000여명. 탈북민은 어느덧 우리 일상 속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늘어났다.

하지만 이들에게 ‘코리안드림’은 아직 머나먼 이야기다. 국내 적응에 실패해 다시 북으로 돌아가거나 제3국으로 떠나는 탈북민의 소식이 심상치 않게 들려온다. 탈북민 3만 명 시대를 맞아 이들이 ‘탈(脫)코리아’에 나서는 이유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한국의 대령에 해당하는 북한군 대좌까지 지낸 군 고위 간부 출신 박용호(가명)씨는 2000년대 초반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식당만 갖고 있으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는 북한에서의 경험만 떠올린 채 박씨는 한국에 정착한 뒤 모은 돈을 전부 투자해 요식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자영업의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늘어나는 빚더미에 결국 집까지 압류당한 박씨는 한국 생활을 모두 정리한 채 눈물을 머금고 미국으로 떠났다.

24일 이용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제3국으로 출국 후 돌아오지 않는 탈북민은 2015년 664명에서 지난해 771명으로 4년간 107명(16%) 증가했다. 2012년 이후 지난 9년간 북한으로 다시 월북한 탈북민도 30명에 이른다. 이제 북한도 마냥 문을 걸어 잠그고 살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서서히 북한 동포들을 맞이하는 새로운 통일 시대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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