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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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정치가 ‘예(禮)’와 ‘형(刑)’을 잃었다. 예부터 정치의 요체로 회자돼 온 단어다. 정치가 잘되려면 지도자들이 반드시 ‘예, 형’을 지켜야 하는데 거꾸로 가고 있으니 혀를 찰 따름이다.

‘예, 형 정치’를 강조한 학자는 주나라 순자(荀子).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책사 제갈량은 순자의 가르침을 이행해 나라를 성공시킨 인물이었다. 유비가 세 번을 찾아가 머리 숙여 기용한 삼고초려의 주인공이 아닌가.

그는 조조의 대군을 적벽대전에서 격멸시키면서 나라 위상을 높였다. 유비는 유언으로 자신의 아들이 무능하면 몰아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도 좋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끝까지 아들을 황제로 보필한 충신이 된다. 그는 법을 엄정하게 집행하고 부를 쌓아 백성들을 잘살게 했다.

맹자는 제왕의 덕목으로 ‘인의(仁義)’를 강조했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며, 의는 길이다’라고 정의했다. 백성들을 인으로 사랑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가르친 것이다.

맹자는 정도를 어긴 권력에 대한 백성들의 저항을 정당화했다. 왕의 권력은 백성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군주답지 못하면 갈아치워도 좋다고 한 것이다.

충담사는 신라 경덕왕 때 승려. 향가를 잘 불러 궁중 여인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가 지은 ‘안민가(安民歌)’가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데 임금에게 충고한 대목이 나온다. 공자의 논어 안연 편에 나오는 명언을 인용한 것이다.

‘아으, 군다이 신다이 민다이 하날단 나라악 태평하니잇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다면 나라는 태평하네… 君君 臣臣 父父 子子)’.

집권여당은 민주주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법의 공정한 가치를 허물고 말았다. 헌법과 법률을 무시한 채 숫자의 우위를 이용해 각종 법안의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권력에 취하더니 이제는 보이는 것이 없는 모양이다.

도대체 대한민국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미래의 주인공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겠다는 것인가. 허탈하고 분노마저 끓어오른다.

원로 법률전문가, 대학교수, 법조계 많은 인사들이 우려하고 중지해야 한다고 고언한 검찰총장에 대한 2개월 징계를 대통령이 승인하고 말았다. 법률가인 대통령이 민심을 역행한다면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윤 총장은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공작, 유재수 비리 비호,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월성 1호기 평가 조작 등 정권을 겨냥한 수사를 하면서 대통령에게 미운털이 박혔다. 주요 언론과 대부분 법조계 인사들은 법무부의 윤 총장 징계 사유가 엉터리였으며 절차는 불법을 넘어 공작에 가깝다고 평가하고 있다. 50% 이상의 국민들이 이번 징계가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추 장관이 사의를 표명하자 청와대는 ‘시대의 임무를 완수했다’고 입이 마르도록 치하했다. 민심을 모르는 진영만의 자화자찬이다. 검찰총장을 식물인간으로 만든다고 해서 이 정부의 권력 비리가 모두 감춰지는 것은 아니다. 권력이 ‘예와 형’을 잃으면 무너진다는 섭리를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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