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국가가 입법권을 통해 제정하는 실정법 역사의 출발점에는 로마법과 게르만법이 있다. 로마법은 성문법으로 발전했고, 게르만법은 불문법의 일종인 관습법으로부터 시작됐다. 오늘날 민사법 영역에 많은 영향을 미친 로마법에는 사적 자치의 원칙과 자기책임의 원칙이 있다. 이 원칙들은 오늘날에도 민사법에서뿐만 아니라 공법영역에서도 중요한 원칙으로 법의 해석과 적용에 응용되고 있다.

로마법으로부터 나온 이 원칙들은 오늘날 민사법 영역에서 중요한 원칙이다. 국가는 사적(私的) 영역에 원칙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개인 간에 분쟁이 발생해 그 해결을 위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면, 국가는 중립의 입장에서 관련 법조항을 찾아 해석하고 적용한다. 과거 형법에는 간통죄가 규정돼 있었기 때문에 국가는 개인의 성생활 문제에 형벌권을 행사함으로써 개입했다.

형법의 간통죄는 부부간에 배우자 이외의 자와 성관계를 처벌하는 규정이었다. 형법상 간통죄는 친고죄로 고소를 해야만 처벌할 수 있는 범죄였으며, 간통죄는 먼저 이혼소송을 제기해야만 고소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간통죄는 이혼을 결심해야만 고소할 수 있는 문제가 있었다. 물론 민법상 이혼 사유 중에는 배우자의 부정행위가 있지만, 이는 여러 부정행위를 포함하는 것이라서 간통죄와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형법상 간통죄는 형법 제정 당시부터 개인의 사적 영역에 국가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그렇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혼인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간통죄를 도입하게 했다. 그런데 사회가 발전하고 남녀평등과 여성의 권리도 함께 발전했다. 이와 함께 삶의 다양한 부분에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발전했고, 개인이 중요한 사적 사안에 관해 공권력의 간섭 없이 스스로 결정하고 이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권리도 신장됐다.

개인의 자기결정권이 중요한 기본권이란 인식이 확산되면서 간통죄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에 헌법재판소에 간통죄가 위헌이라는 소송이 청구되기 시작했다. 헌법재판소는 1990년 간통죄에 대한 첫 번째 합헌결정에서 “간통죄의 규정은 선량한 성도덕과 일부일처주의의 혼인제도의 유지, 가족생활의 보장 및 부부쌍방의 성적 성실의무를 확보하기 위하여 그리고 간통으로 인하여 생길 수 있는 사회적 해악의 사전예방을 위하여 필요한 법률로서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위반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2015년 헌법재판소는 간통죄에 대한 다섯 번째 결정에서 판례를 변경해 위헌결정을 했다. 이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10조는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고,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은 개인의 자기운명결정권을 전제로 한다. 이 자기운명결정권에는 성행위 여부 및 그 상대방을 결정할 수 있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포함돼 있으므로, 형법상 간통죄 심판대상조항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라고 해 간통죄를 위헌이라고 했다. 간통죄는 폐지됐지만, 민법상 배우자 부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제도는 남아있다. 그렇지만 간통죄 폐지는 개인의 자기결정권 보장의 강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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