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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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인정 욕구와 타인인정 욕구라는 것이 있다. 두 욕구는 정반대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보통의 사람들은 타인인정을 통해서 자기인정을 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들은 여러 가지 방법들을 통해서 자기인정을 하고, 칭찬에 힘을 얻으며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뿌듯함과 함께 행복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는 포인트는 사람마다 다르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에서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여기서 주인공인 테레사는 토마스가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고, 나중에 토마스를 만나러 갈 때 그녀도 ‘안나 카레니나’를 들고 있었다. 시골의 술집에서 근무하던 그녀에게 그 책은 신분상승을 위한 티켓 같은 것이었을 수 있다는 해설을 읽은 적도 있는데 공감이 됐다. 아마도 그 책은 시대의 지성을 대표하는 것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서도 공산주의 이론을 잘 알아야 세상을 앞선 지식인처럼 인정됐다는 내용이 나온다. 주인공 강모는 사촌이 평민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공산주의 이론을 이야기 하는 것에 기가 죽는다.

스스로 옳다는 확신을 가진 사촌 때문에 강모는 상대적으로 뭔지 모르는 부족함을 깨닫는 것이다. 물론 소설 속에서의 이야기이긴 하다. 소설의 주인공을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칭찬할 수 있을 때 남의 시선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업적을 깎아 내리거나 비난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올려 보려고 노력한다. 꼭 그런 의미로 비난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다른 사람의 눈에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뜻이다. 만일 상대방이 정말 비난받을 만했는지를 알고 싶다면 자신의 기분을 체크해 보면 된다. 비난한 후에 자신이 관찰력이 뛰어나고 남다른 관점을 가졌기 때문이라면 깨달음의 기쁨 비슷한 것이 느껴져야 한다. 기분이 썩 좋지 않다면 그것은 비난을 위한 비난인 것이다.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 때 진정으로 자신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는지를 스스로 관찰해야 한다. 필자의 경우는 책을 통해서 아니면 뭔가 남들과 다른 안목을 가지고 깨달음을 얻었을 때, 스스로 칭찬받을 만하다고 느끼게 된다. 가끔 사진을 감각적으로 잘 찍는다거나 취미로 하고 있는 서각을 할 때, 색감이 좋다거나 하는 칭찬들이 셀프칭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스스로 칭찬받을 만한지 애매할 때가 있다. 그럴 때 기준도 다 다르겠지만 필자의 경우, 돌아가신 어머님이 자랑스러우셨을까 라고 생각해 본다. 그렇게 하면 진정 칭찬받을 만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선명하게 나누어진다. 셀프칭찬은 무척 주관적일 수 있다. 또 주관적이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멋지고 즐겁게 살아가야 할 권리가 있을 뿐이니까. 늘 스스로 칭찬거리를 찾으면서, 때로는 만들어내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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