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초빙교수

위기일까, 기회일까. 해석들이 분분하다. 요즘 태권도인들은 몇 명 모이기만 하면 한국 태권도의 앞날에 대해 우려 반, 기대 반으로 뒤섞인 논쟁을 벌인다. 지난 주말도 그런 자리였다. 태권도 대학교수, 세계선수권대회 전 챔피언, 대한 태권도 협회 전 임원, 태권도 실업팀 코치, 태권도 사범 등이 대부분이었던 세미나 모임에서 한국 태권도의 현재와 미래를 놓고 진지한 대화가 오갔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 태권도가 이기기만 해 태권도의 세계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는 종주국도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만큼 태권도가 세계화를 향해 한층 더 나아갈 것이다”며 현재의 상황을 세계화의 과정으로 받아들이자는 기회론자의 견해이다.

“일본 유도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세계화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종주국의 품격과 명예를 잃으면 한국 태권도의 경쟁력이 그만큼 흔들릴 수 있다. 태권도의 세계화는 실력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며 현재의 고비를 잘 추스리며 세계화를 해야 한다는 게 위기론의 생각이다.

이처럼 태권도의 위상을 놓고 활발한 주장들이 터져 나온 것은 이달 초 경주에서 열린 2011 세계태권도 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이 역대 가장 초라한 성적을 보였기 때문이다. 남자팀이 37년 만에 종합우승을 내줬는가 하면 여자팀은 금메달 1개로 중국(금2개)에 뒤지고도 종합점수제 덕분에 겨우 종합우승을 했다. 그동안 종주국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세계 정상을 차지하는 것을 당연시 했던 만큼 이번 성적이 던져준 충격은 대단히 컸다. 특히 안방무대에서 망신을 당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세계태권도연맹과 대한태권도협회도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시각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세계태권도연맹은 만족감으로, 대한태권도협회는 위기감으로 각각 생각을 달리했다.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는 “이번 대회에서 태권도의 세계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더 이상 한국 속에 갇힌 태권도가 아닌, 우리의 태권도를 되찾은 날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언론에서 보도했다.

올림픽에서 태권도를 계속 지켜나가기 위해 힘을 쏟고 있는 세계태권도연맹은 이번 대회에서 나타난 세계 각국의 평준화된 경기력은 태권도의 올림픽 종목 지속여부를 결정할 2013년 아르헨티나 IOC 총회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한태권도협회는 세계연맹과 달리 초상집 분위기이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이어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예상 밖의 저조한 성적을 보이자 양진방 협회 사무총장이 최근 책임을 지고 사의를 밝혔다. 남녀대표팀도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의 개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실력으로서는 2012년 런던올림픽 예선도 통과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한국 태권도의 부진은 자만심과 새로운 경기방식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때문으로 분석된다. 세계태권도는 전자호구 판정으로 경기동작을 분, 초 단위로 분석하며 치밀한 전략을 세울 정도로 과학화, 객관화, 합리화 등 제반 여건이 향상됐으나 한국 태권도는 그간 ‘우물안 개구리’와 같이 정체돼 있었다는 지적이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49kg 이하급 8강전에서 대만의 스타 태권도 선수 양수쥔에게 4-7로 패한 김혜정을 지도한 엄광흠 춘천시청 코치는 “그동안 우위라고 여겼던 기술적인 면에서도 우리 선수들이 강점으로 내세울 수가 없었다”며 “근본적인 변화를 하지 않으면 한국 태권도의 국제 경쟁력은 회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태권도인들은 근본적으로 한국 태권도가 세계무대에서 밀리는 것을 결코 원치는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기다, 기회다를 논하는 것도 좋지만 한국태권도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비전을 세우고 총력을 쏟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세계 태권도가 본격적인 경쟁화 시대를 맞은 만큼 한국 태권도는 종주국이라는 현실에 안주하던 것에서 탈피하고 이제 새 출발을 해야 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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