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김덕수 

신묘년 사월 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이 봄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지나갑니다. 조계종단에서는 올해를 彿紀 2555년으로 표기합니다. 그러나 제가 알기로는 올해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흥화하신 지 3018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온 지 어언 170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조금만 눈여겨 살펴보면 조상님들은 불사나 중창불사를 할 때에 언제나 부처님 應化佛紀(응화불기)를 사용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부처님나이를 오백 살가량 줄여 먹고 있습니다. 올해엔 올바른 佛紀사용도 한번 되짚어 보아야겠습니다.

‘자기의 心性을 철저히 깨쳐 모든 법의 實相을 直視, 正覺을 이루라’는 깨우치심은 오늘날에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듯싶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正覺을 이루신 후 불법이 중국을 거쳐 이 땅에 전래된 이래 수많은 조사들이 불법의 진수를 역설하고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세상은 더욱 타락해 최악의 말세로 치닫고 있습니다. 부처님보다 오백여 년 늦게 중국 땅에서는 공자님이 태어나서 유교를 집대성합니다. 공자께서도 하도 세상이 다급하게 돌아가니 우선 仁義를 말씀하시며 修身을 강조하셨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두 성인께서 이 지구에 오시지 않았다면 이 우주는 온전한 암흑세계로 남았을 겁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 칠흑 같은 어둠의 세계에서 밝은 등불이 되어 갈팡질팡하는 중생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주셨습니다. 지난 삼천 년의 인류역사가 이기심을 극대화해온 과정이라면 자본주의의 득세는 그 頂點(정점)을 이루었다고 보면 됩니다.

물질은 지극히 풍요로워졌는데 정신은 갈수록 타락해 예와 도덕이 완전히 실추돼 버렸습니다. 人倫과 道德이 무너지고 망한 세상을 난세니 또는 말세라고 합니다. 우주의 綱紀(강기)가 무너져 내렸다는 뜻입니다. 작금의 세상이 난세임을 분명하게 인식시켜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경각심을 일깨워 주신 것이죠, 이 얼마나 고맙고 귀중한 가르침이 아닌가요? 인류가 나아가야 할 뚜렷한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곧 大道요 正法입니다.

이 大道와 正法은 다른 데서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자기 省察(성찰)에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중국 殷代(은대) 湯 임금의 욕조에는 ‘진실로 날에 새롭거든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湯之盤銘 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목욕은 곧 마음을 맑히는 것입니다. 목욕을 빌려서 마음속에 끼어있는 때를 씻어내라는 가르침입니다. 요즘 사람들같이 목욕 잘하는 시대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몸속에 낀 때는 잘 씻어도 오장육부 더 나아가 마음속에 끼인 때를 씻어내는 데는 게으릅니다. 이치는 하나인데 말입니다. 광목으로 된 옷이나 하얀 천에 낀 때는 잿물에 넣어 치댄 후 끓는 물에 삶아내서 빨아야 깨끗해집니다. 이것을 蕩滌渣滓(탕척사재)라고 합니다. 그래서 낀 때를 닦아내는 과정을 修道 修身이라고 하는 겁니다.

마음에 때가 끼면 정신이 흐릿해집니다. 날씨가 비가 오려고 하면 구름이 끼어 밝은 태양을 가리니 날씨가 흐리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 태양을 가리고 있는 구름을 제거하면 밝고 밝은 태양이 다시 비추듯 마음에 낀 때만 제거하면 됩니다. 그래서 스스로가 맑고 밝은지를 항상 점검하는 것이 자기 省察입니다. 자기성찰이 한결같으면 정신은 맑아져 惺惺하게 됩니다.

욕망을 따라 가는 것이 人心이요 그 인심을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제재하는 것이 道心입니다. 이 도심이 온전한 것이 석가모니께서 이루신 견성이며 정각입니다. 석가세존 탄신일을 맞아 너도 나도 오만 원 등, 십만 원 등 등불을 켜고 복을 빕니다. 절대 나무, 돌, 철로 된 부처님께서 복 줄 리 없습니다. 이제는 마음의 등불을 밝혀 스스로를 돌아보며 더 나아가 인류의 발걸음도 되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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