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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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평양에서 어떤 존재일까. 평양 권력의 실질적 2인자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그는 지난 6월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공중폭파로 날려 보낸 데 이어 9월에는 서해상에서 헤엄쳐 간 우리 민간인을 쏴 죽인 장본인이기도 하다. 어떻게 1988년생으로 올해 겨우 33살밖에 되지 않은 그에게 이런 막강한 권력이 주어졌단 말인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12월 8일 김여정 제1부부장은 대한민국 정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북한 코로나19 대응 관련 발언을 ‘망언’이라며 비난하고 나서면서 섣부른 내정간섭에까지 나서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바레인-아랍에미리트 순방 중이던 지난 5일 바레인에서 열린 마나마 대화 제1세션 ‘코로나 팬데믹 글로벌 거버넌스’에 참석해 “코로나19 확진자가 전혀 없다는 북한 주장은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확진자가 없다는 북한이 국경을 폐쇄하고 방역에 집중하는 모순된 상황을 보인다고 꼬집은 것이다. 이 말이 뭐가 어디가 잘못된 것인가. 강 장관은 “북한이 우리 코로나19 방역 지원 제안에 별로 호응하지 않고 있다”며 “나는 코로나19 도전이 사실상 ‘북한을 보다 북한답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예를 들어 더 폐쇄적이 되고, 코로나19 대응에 관해선 거의 토론이 없는 하향식(톱다운) 결정 과정을 보인다”고 덧붙였다.

강 장관은 “북한은 여전히 (코로나19 확진) 사례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지만 믿기 어렵다”며 “모든 신호는 북한 정권이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는 질병을 통제하는 데 아주 강도 높게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좀 이상한 상황(a bit of an odd situation)”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여전히 북한에 코로나19 관련 도움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며 “공중보건 관련 동북아 협력체에 참여하라고 초청한 바도 있다”고도 했다.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으로서 문을 닫고 있는 북한에 대해 이 정도의 말은 지극히 정상적인 외교 메시지이기도 하다. 한데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북한 코로나19 대응 관련 발언을 ‘망언’이라며 발끈하고 나섰다.

김 부부장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2020년 12월 8일 발표한 담화에서 “며칠 전 남조선외교부 장관 강경화가 중동 행각 중 우리의 비상방역조치들에 대해 주제넘은 평을 하며 내뱉은 말들을 보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들었다”면서 이어 “앞뒤 계산도 없이 망언을 쏟는 것을 보면 얼어붙은 북남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냉기를 불어오고 싶어 몸살을 앓는 모양”이라며 “그 속심 빤히 들여다보인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확히 들었으니 저희는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고 아마도 정확히 계산돼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렇게 김여정이 강경화의 코로나 발언에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여정 부부장의 이날 담화는 강 장관 개인을 겨냥한 것이라기보다는 방한 중인 비건 부장관을 향한 것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임기 만료 전 고별 방문 중인 비건 부장관은 이날 오전 외교부 청사에서 최종건 제1차관과 한미 외교차관 회담을 가졌다.

김 부부장과 비건 부장관은 지난 7월에 충돌한 바 있다. 비건 부장관은 지난 7월 8일 “김정은 위원장이 나와의 협상 대상을 임명할 때, 그리고 그 사람이 협상 준비가 돼 있고 협상 권한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북측에 협상 대상을 명확히 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그러자 김 부부장은 3일 뒤인 7월 10일 담화를 통해 “우리는 결코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며 “조선 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자면 우리의 행동과 병행해 타방의 많은 변화 즉 불가역적인 중대조치들이 동시에 취해져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고 향후 비핵화 협상 방침까지 밝혔었다.

이처럼 김 부부장이 비건 부장관 방한에 맞춰 담화를 낸 것은 김 부부장이 서서히 막을 내리는 트럼프 정권에 대한, 또 새로운 바이든 정부에 보내는 일종의 대미 메시지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우리 외무장관을 빽자루로 삼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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