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미국프로야구(MLB)에는 오랫동안 “타율이 높은 타자는 포드를 몰고 홈런 타자는 캐딜락을 몬다”는 속설이 있었다. 스즈키 이치로 같은 단타 위주의 교타자가 배리 본즈 같은 홈런 위주의 장타자보다 수입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현재 MLB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른바 ‘슬러거(Slugger)’로 불리는 대형타자들이 고액 연봉 순위에서 투수와 함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시장 상황에 따라서는 바뀔 수 있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으로 평가액이 달라진다. 2021시즌을 앞두고 나란히 MLB 포스팅(비공개 경쟁 입찰)에 신청하며 미국 무대에 도전장을 던진 김하성(25·키움)과 나성범(31·NC)이 그런 경우이다. 포스팅 시스템은 한국이나 일본 프로야구 선수가 MLB로 소속을 옮길 수 있는 제도이다. MLB 사무국이 포스팅 대상선수를 발표하면 30일간 30구단과 자유롭게 협상할 수 있다.

둘이 관심을 끌었던 것은 MLB에서 보는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김하성에 대한 관심이 나성범보다 월등히 높은 것이다. 미국 야구 통계사이트인 ‘팬그래프닷컴’은 김하성에 대해 4년 4400만달러(약477억원)에서 최대 5년 6000만달러(약 651억원)로 계약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반면 나성범은 1년 100만달러(약 11억원) 정도밖에 안 된다는 평가였다. 둘 사이에 큰 차이가 나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KBO 리그 2020시즌 개인성적을 비교해보면 둘 간의 차이는 크게 나지 않는다. 유격수 김하성은 타율 0.306, 30홈런, 109타점, 23도루의 성적을 올렸다. 우익수 나성범은 타율 0.324, 34홈런, 112타점, 3도루를 기록하며 팀의 정규리그 및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에 앞장섰다. 오히려 나성범이 조금 나아 보인다.

하지만 MLB에서 평가는 너무나 많은 차이를 보인다. 국내 야구전문가들은 장타자들이 선호하는 MLB 특성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MLB에서는 타력을 우선해 수비 부담이 적은 외야수에 장타자들이 많은 데 반해 수비 부담이 많은 내야수에는 장타자보다는 단타자가 상대적으로 더 많다. 특히 2021시즌을 앞두고는 수비 실력이 좋은 내야수 기근 현상을 보이고 있다. 김하성의 포지션인 유격수는 수비 폭이 넓어 내야수에서 가장 선호하는 포지션이라는 강점도 갖고 있었다.

김하성은 수년 전 강정호가 처음 MLB에 진출했을 때와 비슷한 입장이다. 유격수였던 강정호도 당시 특급 대우를 받고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입단, 성공적으로 MLB에 데뷔했었다. 강정호는 비록 음주운전 파문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지만 MLB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김하성이 강정호 정도의 활약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반해 나성범이 맡고 있는 우익수에는 MLB 각 팀에 장타자들이 즐비하다. MLB에선 수비 잘하는 외야수보다는 타력이 좋은 외야수를 단연 선호한다. 전통적으로 홈런타자들이 외야수에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나성범이 MLB에서 적응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미국과 한국프로야구는 두 선수의 비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공개적으로 드러난 기록 뒤에는 양국 간 보이지 않는 야구관의 차이를 알 수 있다. MLB 감독들은 대개 좋은 타격이 승리를 낳기보다는 나쁜 수비가 경기를 망치는 경우가 더 많다며 수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럴 경우에 딱 맞는 선수가 김하성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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