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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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수립과 함께 출범한 검찰청 조직에서 이승만 정부 시절 초대 검찰총장에 오른 권승렬 총장(재임기관 1948.10.31~1949.6.5) 이후 지금까지 검찰총장은 43대째를 이어오고 있다. 그동안 검찰총장 개인적으로 숱한 영욕이 따르긴 했지만 법무장관으로부터 직무가 배제되고 징계청구를 받은 검찰총장은 42대까지 단 한명도 없었다. 이를 깨고 문재인 정부에서 지난해 7월 25일 제43대 검찰총장에 임명된 윤석열 총장이 직무 배제되고 징계위원회에 부의된바, 정치권력에 의해 자행된 일련의 일들이 우리사회에서 불거진 것은 72년 검찰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검찰총장이 사상 초유로 직무배제와 징계위에 회부됐으니 윤 총장 개인적으로나 검찰 입장에서는 치욕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추미애 장관이 발표한 검찰총장직 배제 원인과 징계 사유 등에 대해 명백히 드러나는 죄상이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서는 윤 총장은 바보가 아닌 이상 그 혐의를 몽땅 뒤집어쓸 계제가 아니다. 그래서 6개 직무배제 사유에 대해 “위법이 없었다”며 지난달 말 서울행정법원에 취소소송과 집행정지신청을 했고, 법원에서 30일 심리기일을 거쳐 12월 1일에는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됨으로써 윤 총장은 총장직을 다시 수행하고 있다.

자신에 대한 직무배제 조치가 정지된 그날 오후 윤 총장이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면서 취재진들의 물음에 일성으로 답한 것은 새 각오였다. “모든 분들에게 대한민국 공직자로서 헌법정신과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는 내용인바,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현직 검찰총장이 사상 처음으로 타인의 행위에 의해 근무처에 출근하지 못한 채로 있다가 다시 직무에 복귀하면서 한 말이니 이 속에 온갖 의미가 함의된 절제된 대의의 발언이기도 하다.

‘헌법정신과 법치주의를 지킨다.’ 이 말은 비단 공직자뿐만 아니라 국민모두가 행해야 할 정의로운 사회, 건강한 사회를 위한 기본적인 일이다. 그렇게 돼야 만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

이 말은 나라일꾼인 공직자 중에서도 정의와 공정에 특히 유념해 우리사회의 불법과 부당함을 없애야 할 책무가 있는 검찰로서는 절대적인 신념이라 아닐 할 수 없는바, 어떻게 보면 공직자 원칙론을 윤 총장이 곱씹으면서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기 위해 다진 결심인지도 모른다.

검찰조직이 행정부, 즉 법무부의 기관에 속해 있기는 하나 준사법적 기관으로서 정부로부터 독립돼야 하고 정치적 중립성이 지켜져야 함은 대원칙이다. 대검찰청이 중앙행정기관인 부(部)의 청(廳)으로 존속되나 독립성․중립성 보장을 위해 우리 헌법에서는 청장이 아닌 ‘검찰총장’으로 명시돼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차관급인 청장에 비해 한 단계 높은 장관급 처우를 하고 있는 것인바, 이는 뭐라고 해도 법무부 장관으로부터의 독립성 확보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 검찰청사 건물 위에서 나부끼는 깃발에 검찰상징의 CI(Corporate Identity)가 있다. 이는 ‘올곧음’을 비유하는 대나무의 직선을 병렬 배치한 모양으로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의미하는 것이고, 다섯 개 직선은 정의, 진실, 인권, 공정, 청렴을 뜻한다. 이야말로 헌법정신과 법치주의에서 명시되고 보장된 정치적 중립과 직무(수사)에서의 독립성이 대원칙인바, 윤 총장이 대검찰청 복귀 첫날 ‘헌법정신과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한’ 결심은 그러한 맥락과 우리사회에서 겪는 검란의 혼란상을 볼 때 의미심장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정치 권력층이 주도하는 의도적인 검찰의 힘빼기, 검찰총장 징계 등으로 혼란스러운데 정치권과 정치인 출신 장관이 ‘검찰개혁’의 미명으로 검찰 본연의 책무를 봉쇄하려는 속셈은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지난 1월 초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추 장관이 그 총대를 메고 날뛰고 있다. 올해 내내 코로나 창궐로 국민걱정이 많건만 추 장관은 아들의 군 특혜(?)문제, 국회에서의 답변, 추윤 갈등 등으로 국민을 지속적으로 피곤하게 했으니 급기야 국민밉상 칭호까지 얻었다. 대다수 국민들은 먹고 살기 힘들고 전염병으로 걱정이 늘어진 판에, 야기시키지 않아도 됐을 검찰총장 직무배제를 명하고 징계를 청구해 이로 인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가 계속 하락해 30%대로 떨어지고 말았으니 결국 추 장관의 강공책이 대통령의 입장마저 어렵게 만든 처지가 되고 말았다.

추 장관이 의도하는 사상초유의 ‘검찰총장 해임’이라는 술책(?)이 정의와 공정의 벽에 부딪혀 권력층 뜻대로 되지 않는 흐름을 타고 있다. 법치주의 신봉자인 윤석열 총장이 설령 징계위에서 중징계를 받는다 하더라도 징계 청구 사유에서 “위법이 없다”고 판단한 이상 검찰과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법적 다툼에 나설 것은 자명할 터, 그렇게 되면 문재인 정부로서는 돌이킬 수 없는 자살골 형국이 되고 만다. ‘백약이 무효’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레임덕 현상이 발생하기 전에 국면해결의 정답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국민다수가 원하고 있는 추 장관 해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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