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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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여름 해를 잠시라도 보고, 앞을 다시 보면 순간적으로 사물이 분간이 되지 않는다. 강렬한 햇빛 잔상이 시각에 간섭 효과를 순간적으로 일으키기 때문이다.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도 마찬가지 간섭 효과를 일으켰다. 칸영화제는 물론이고 아카데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화제를 휩쓸다시피 하니까 웬만한 영화제의 수상작은 화제가 되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1등주의와 쏠림 현상에 경도된 한국 사회의 단면일 수도 있겠다.

영화 ‘종이꽃(2020)’도 봉준호 기생충의 역광 효과를 본 영화 가운데 한편이다. 지난 5월 제53회 휴스턴 국제 영화제에서 최우수외국어영화상 등 2관왕에 올랐고 주연 배우 안성기는 한국인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곤란을 딛고 장애인 아들의 아버지이자 장의사로서 갖는 인간적인 고뇌와 결단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연기였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화제가 되지 못했다.

영화 ‘종이꽃’은 영화 ‘행복한 장의사(2000)’의 미래 버전으로 읽힌다. 이 영화에서 장의사 일을 배우는 청년 세 명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미래가 영화 ‘종이꽃’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성길(안성기)은 평생 종이꽃을 접어 고인을 장식해 주며 장의사로 일했지만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다. 죽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업형 장례업체들에 밀리고 있어서다. 하지만 그 업체들도 고민은 있었는데 장례 전문가가 없었다. 성길은 평생 스스로 장의사 일을 해왔는데 기업체에 들어가는 것은 전문가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더구나 자신 스스로 장례에 관해 지켜온 철학과 정신 그리고 원칙들이 기업의 수익 논리에 따라서 훼손되는 위기에 처하게 되니 말이다.

실제로 장의사 문화도 바뀌어서 관련학과가 생기고 명칭도 장례지도사라고 공식화됐다. 이뿐만이 아니라 젠더감수성이 장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화 ‘행복한 장의사’에서 수련생이 처음 맞게 된 고인은 혼자 살다가 세상을 뜨게 된 과부였는데, 청년 세 명이 놀라지만 사실 고인이 더 놀랐을 수도 있다. 자신의 몸을 남성들이 알몸으로 보고 만진다면 과연 유쾌할지 의문이 들 수 있다. 한 대학의 통계를 보면 2000년대 초반 여성 장례지도사가 30%였는데 지금은 60%를 넘는다고 한다. 유가족들이 여성 장례지도사를 원하는 경우가 늘고, 때문에 장례업체들의 요구도 증가했다. 태어날 때 산파나, 여자 산부인과 의사가 맞이하듯 돌아갈 때도 그 순리에 맞추고 있는 것이다.

여하간 여성이든 남성이든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종이꽃의 철학을 공통으로 공유하는 점은 코로나 시대에 필요해 보인다. 영화 ‘종이꽃’에서 성길이 아이에게 종이꽃의 의미를 말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사람이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죽으면 다 같은데 부자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에게도 상여에 종이꽃으로나마 예쁘고 화려하게 장식해 주는 것이란다.” 때문에 성길은 장례업체에서 고객이 돈을 낸 것만 해주라는 압박에도 종이꽃을 누구에게나 해주려 한다. 시청과 장례 업체의 반대에도 평생 불우한 이웃을 위해 애쓴 동네 주민을 위해서 마침내 번민 끝에 종이꽃이 달린 장의차를 출발시킬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세계 코로나 사망자가 150만명을 넘어섰고 한국에서도 500여명을 훌쩍 지났다. 대부분 기저질환이 있거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다. 수없이 많기 때문에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마치 쓰레기 처리되듯 하는 풍경이 반인도적으로 읽힌다. 장례 문화가 비록 많이 바뀌고 있지만 전통 장례문화에서 중시했던 종이꽃의 철학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계속 계승돼야 할 것이다. 그것이 코로나가 최고 심각한 미국의 휴스턴에서 전해진 낭보를 다시금 되새기는 이유이다. 양극화 문제 이전에 이 시각에도 난데없는 죽음에 슬퍼할 모든 이들을 위해 종이꽃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화려한 트로피들의 수집도 중요할 수 있지만, 소박해도 우리의 삶, 각자의 삶에 필요한 작품들이 눈에 들어올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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