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caption

최병용 칼럼니스트

코로나19로 2주 연기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우여곡절 끝에 종료됐다. 미국은 SAT, 프랑스는 바칼로레아 시험을 취소했지만, 한국은 1일 확진자가 500명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예정대로 수능을 치러냈다. 수능을 재연기하거나 취소하면 대학입시 진행이 어렵게 되고 국가적 혼란에 가까운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확진자마저 생사의 갈림길에 병원에서 시험을 보니 수능의 중요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된다. 전국의 모든 수험생이 동일한 문제로 단 하루에 실력을 겨루는 시험이라 공정성 면에서 최고의 방법이다.

수능이 끝이 아니어서 이제부터 수험생들은 자신이 응시했던 수시, 혹은 정시 모집 요강에 맞춰 입시전략을 짜고 최종합격자 발표가 나올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올해 대학입시도 작년에 비해 아무런 변화 없이 예전처럼 진행된다. 공청회에서 국민의 정시확대 요구를 확인해 정부가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 비중을 40% 이상으로 확대하라는 대입제도 개편안을 제시했지만, 정시를 늘린 대학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정시를 늘리는 척하며 진보교육감들이 공약으로 내세웠던 수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정시 100%였던 대입제도가 미국식 사회에서나 적용 가능한 학생부종합전형이란 제도를 들여오더니 야금야금 정시를 파고들어 수시 70%, 정시 30%로 수시가 더 많은 기형적인 입시제도로 변질했다. 수시든 정시든 각자의 제도가 지닌 장단점이 분명히 있다. 단 하루 시험으로 12년간 학창시절이 모두 평가받는 수능은 학생의 다양성 측면에서 볼 때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 반면 고등학교별 수준, 학교별 교사의 수준이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산출된 내신 점수와 학생부 기록을 반영하는 수시는 공정성이 담보되지 못하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수능으로만 선발하는 정시가 문제가 있어 수시를 도입해야 한다면 공무원 시험, 취직 시험, 자격증 시험에도 수시 제도를 적용해야 맞다. 성적순으로만 뽑은 공무원이 능력이 떨어진다는 근거도 없고, 대학 수시합격자가 창의성이 뛰어나다는 근거도 없다. 시험으로 공정하게 선발하는 방식이 공무원 시험은 괜찮고 대입제도로는 불합리하다는 논리도 맞지 않는다. 현행 입시제도는 고등학교에 입학해 첫 중간고사를 치른 후 성적에 따라 대입 전략을 결정하고 3년간 끝없는 레이스를 펼쳐야 한다. 첫 시험에서 내신이 잘 나오지 않은 학생은 정시 위주 입시전략을 세우고, 내신이 좋게 나온 학생은 수시 위주로 입시전략을 짜야 하는 공부보다 전략 전술이 더 필요한 입시제도로 문제가 많다.

대학생과 대입 뒷바라지를 했던 부모의 의견을 들어보면 수시는 “부모나 학생을 3년간 피 말리는 제도다. 수시가 정성적인 요소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면 좋은 제도지만 그 부분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 현실에서는 맞지 않는다”라고 한다. 학생들도 ‘공부를 못해도 한 가지만 잘하면 원하는 대학을 간다’라는 수시 슬로건에 한순간 혹하지만, 입시를 준비하다 보면 ‘정시가 합리적인 경쟁방식이구나’라는 걸 바로 깨닫는다.

정시냐 수시냐를 떠나 학생이 과도한 경쟁을 하지 않고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입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과 같이 수시에 편중된 제도로는 내신 따기 경쟁을 피할 수 없어 학생들의 학교생활이 불행하다. 비교과활동·봉사활동·수행평가 등 학생이 교과 수업 외에 챙겨야 할 게 너무 많다. 당연히 부모 찬스와 사교육·컨설팅 찬스가 동원될 수밖에 없어 부유층이 유리하다. 게다가 일부 학교의 성적 우수자 상장 몰아주기 등 폐해도 적지 않게 발생해 한번 내신이 뒤처진 학생은 대입을 일찍 포기하고 만다.

현행 입시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학생이 행복한 학교는 요원하다. 학생이 행복한 입시제도는 간단하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과도한 경쟁을 하지 않고 공부에만 매몰되지 않고 즐거운 학교생활이 가능해야 하는 게 첫 번째 조건이다. 두 번째는 한순간 방황하며 공부하지 않던 학생도 어느 순간 열심히 공부하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어야 한다. 세 번째는 너무 한쪽에 편중된 제도로 학생이 선택의 폭이 줄어들면 안 된다. 네 번째, 가장 중요한 공정성이 담보돼야 한다. 정말 간단한 명제인데 복잡한 수학방정식처럼 풀지 못하고 대입 전형방식이 3천개가 넘는다니 이 정도면 교육 정책담당자의 직무유기다. 학생이 행복한 대입제도를 만들어야 학교 가는 게 행복해진다. 학생이 행복하면 사교육비가 줄어들고 가정이 행복해진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