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호 소설가

나는 변호사다. 직업이 빵빵하니까 돈 많이 벌겠다고? 천만에! 변호사도 변호사 나름이다. 요즘은 변호사가 얼마나 많이 쏟아져 나오는지 닭이 알 낳듯 한 해가 다르게 식구가 늘어나는 게 변호사 사회다. 그래서 변호사 개업 잘 못했다가는 그야말로 맹물 마시고 이빨 쑤시는 양반 꼴이 되기 십상이다.

다만 변호사가 되면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 남의 인생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저절로 생긴다는 것인데, 송사(訟事)가 바로 그것이다.

소송을 맡다보면 피와 살을 나눈 부모형제나 부부 사이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이익과 재물 앞에서는 촌수 불문하고 여지없이 남남이 되거나 원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인간의 경악스러운 탐욕과 그 잔인함이라니!

그런가 하면 아주 희한한 사건을 의뢰받기도 한다. 가증할 물욕과는 오히려 정반대되는 순정만화 같은 송사다. 물론 너무 순진하고 치기가 만만해 소송까지 갈 수도 없는 사건이지만.

하여튼 ‘조막손 사내’가 내 사무실로 찾아온 건 1년 전쯤의 일로, 내가 그를 기억하는 것은 그가 방문한 용건이 그야말로 ‘어메이징’하기 때문이다.

# 사내는 예전에 주물공이었다.
사내가 ‘조막손’이 된 건 부주의로 끓어 넘치는 쇳물이 그의 손을 덮친 결과였다. 그 불행한 사고는 사내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던 신혼 초에 일어났었는데, 그 뒤부터의 호구는 전적으로 사내의 아내가 책임져야 했다. 그런 손으로는 사내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바느질 솜씨가 뛰어났던 사내의 아내는 한복 가게를 냈다. 조그마한 가게였는데,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들이 늘어났다. 가게의 호황은, 물론 야무진 솜씨가 으뜸 원인이겠지만, 그즈음부터 불기 시작한 ‘우리 옷 입기’ 바람도 한몫을 했지 싶다. 어쨌든 그 가게로 두 사람 생활은 너끈히 되었다.

사내의 아내는 착한 여자였다. 그녀는 남편이 건강하기만 하다면 그가 무슨 짓을 하던 입도 벙긋 하지 않았다. 언제나 묵묵히 자신이 할 일만 했다. 다만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에 좀 불만이 있었지만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십 년을 하루같이 사내의 진정한 반려자로서 최선을 다하고 살았다.

“이런 아내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요것 하나 남겨놓고.”
그러면서 사내는 내 앞으로 종이 한 장을 펼쳐 보였다. 3억짜리 생명보험증서였다. 이어 사내가 나를 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변호사님은 예전에 있었던 ‘휴거’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엉뚱하고도 갑작스런 질문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송사 의뢰 중에 느닷없이 휴거 사건이라니! 하지만 얼굴과 목소리에서 심각성이 느껴지는 사내의 태도에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어 나는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공중들림. 그거, 두말할 것도 없이 불발로 끝났잖습니까. 하나님이 선인을 골라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맞춰 바로 천국으로 데려간다? 그게 어디 말이나 됩니까?”

“물론 저도 그 방법에 있어선 오류가 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어쨌든 선인을 천국으로 데려간다는 데는 이의가 없잖습니까?”

나는 사내의 말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요즘 변호사가 늘어나 한 건의 수임 사건도 아쉬운 판이었다. 혹시 괜찮은 건수라도 걸릴까 싶어 기대를 했는데, 사내의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순진한 희망은 어이없이 무너져버렸다.

“그래, 찾아온 용건이 뭡니까? 본론만 간단하게 얘기하시죠.”
내 어조는 어느새 딱딱해져 있었다. 사내도 분위기를 알아차렸는지 자세를 가다듬었다.
“아내의 실종 신고를 내지 않고 보험금을 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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