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댐

전윤호(1964 ~  )

영하 십칠 도의 아침

29억 톤짜리 악몽에서 깨어

서리꽃 핀 산을 바라본다

123미터도 부족한가

평생을 가둬놓기엔

자갈과 모래로 다진 530미터 벽 아래

여전히 얼지 않는 저 거대한 슬픔

강으로 흘리는 눈물 천 리를 가는데

후회로 묶여 흔들리는 배 한 척

이제는 알겠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평생을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슬픔도 깊으면 힘이 세진다

 

[시평]

슬픔은 어쩌면 인간의 본연인지도 모른다. 우리네 삶에서 슬픔이라는 것이 없다면, 그 삶은 어쩌면 진정한 삶이 될 수가 없을 것이리라. 태어나면서 울고,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울고, 그러나 울지를 못한다고 해서 어디 가슴 한구석에 슬픔이 없겠는가. 울지를 못한 채, 안으로만 지닌 슬픔이 어쩌면 우리의 진정한 슬픔인지도 모른다.

춘천 소양댐은 충주호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인공호수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양에서도 가장 크고, 세계에서는 네 번째로 큰 사력댐이기도 하다. 춘천, 홍천, 양구, 인제 등 네 개의 시와 군에 접해 있어, 흔히 내륙의 바다로도 불린다. 1973년 10월에 준공이 됐으니까, 이 댐에는 거의 40년 가까이 29억톤의 물이 갇혀져 있는 것이다. 물론 일부는 흘러내리고, 또 그 일부는 새로운 물로 채워지기도 했겠지만, 29억톤의 물이 40년 가까이 갇혀 있는 거대한 호수이다.

갇혀졌다는 것, 갇혀 있으므로 정치돼 있다는 것. 이것은 크나큰 슬픔이 아닐 수 없으리라. 흐르지 못하는 슬픔. 그래서 혹한의 영하 십칠 도에도 결코 얼지를 못하는 슬픔. 소양호는 바로 이러한 슬픔을 안으로, 안으로 여미며 40년을 견뎌온 것이리라. 그러나 슬픔도 깊으면, 스스로를 견디는, 그래서 스스로를 견딜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슬픔을 슬픔으로 표출하지 않는, 아니 표출시키지 못하는 그런 힘 안으로, 안으로 깊이 간직한 채, 얼지 않는 거대한 슬픔, 어쩌면 우리들 삶의 한 방식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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