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맹기 서강대 언론대학원 명예교수

not caption

탈원전정책·화평법·화관법은 하나같이 청와대와 관련이 있다. ‘고집이 세다’ ‘북한․중국에 받친 것이다’ ‘환경 파괴다’ 등 많은 이유가 시중에서 논의된다. 절박함은 감춘 채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해당 지식인들은 한 마디씩 던질 뿐이다. 그러나 脫원전은 우리나라 산업생태계 육성과 관련된 것이고, 화평법․화관법은 국제경쟁력과 대학을 졸업한 청년 일자리와 직결된다.

작년 대학 이수율은 69.8%로 OECD 1위 국가이다. 대학 졸업자가 갈 수 있는 직업은 한정돼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대졸자 실업률은 5.7%로 OECD 평균 5.3%보다 높다. 신은진 조선일보 기자(12.2)는 “지난 10년 새 OECD 14위서 28위로”라고 했다. 2020년 코로나19로 그 통계는 참담하다. 중국에 문을 활짝 열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친 공산권 정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쪽은 대한민국 고등교육 이수자(25∼34세)이다.

교수들은 코로나19로 학생들을 대면하지 않고 강의를 한다.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으로 해당 전공영역이 위기를 맞고 있다. 더욱이 최근 전문영역 지식인의 사회적 사명이 흔들리고 있다.

일차대전이 끝난 이후 1919년 1월 막스 베버(Max Weber)는 당시 뮌헨 대학 진보학생 단체인 ‘자유학생연대’로부터 ‘직업으로서의 학문(Wissenshaft als Beruf)’이라는 강연을 요청받았다. 당시 독일이 처해 있던 대외적, 정치적 그리고 정신적 위기상황에 대한 해석에 굶주린 학생들이었으며, 이들은 동시에 이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줄 카리스마적 ‘예언자’나 ‘설교자’를 요구하고 있었다(전성우 옮김, 2006, 나남, 11쪽).

강연 내용은 “학문의 세계에서 우리는 그 능력과 업적을 기준으로는 ‘대가’와 ‘비대가’를 구분할 수 있지만 ‘천직’으로서의 소명의식과 구도자적 겸허함, 그리고 ‘무한책임’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대가 비대가의 구분은 사라지고 단지 ‘학자’가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전문직의 사회, ‘천직’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했다. ‘천직’이라…. 정부 정책으로 국내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학생 모집이 어려워진 상태이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월성 1호기 조기 중단에 대한 의사결정을 정밀감사를 했다.

조백건 조선일보 기자(11.23)의 〈산업부가 삭제한 문건 444건에 ‘北 원전건설’ 파일 10여개 있었다〉에서는 “산업통산자원부가 작년 12월 감사원의 월성 원전 1호기 감사 기간에 삭제한 내부 문건 444건 중 ‘북한 원전 건설 추진’ 보고서 10여 건이 포함된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북한 원전 관련 문건은 모두 2018년 5월 초·중순 작성한 것이다. 문건 작성 시기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1차 남북 정상회담(4월 27일) 직후이자, 2차 남북 정상회담(5월 26일) 직전이었다. 현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며 ‘새 원전 건설은 없다’고 했으나 북한에는 원전을 새로 건설해주는 방안을 비밀리에 검토했던 것이다”라고 했다.

이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에너지 주권을 북한과 중국에 넘기고 싶은 것이다. 더욱이 월성 1호기는 원자탄을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핵무기와 에너지 주권을 북한에 넘기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 종북 성향의 말장난, 아마추어 정신에 전문직의 ‘천직’이 날아가게 생겼다. 그 결과 연구자는 연구의 터전을 잃게 되고, 학생들은 국제경쟁력 있는 분야의 직업을 상실하게 됐다.

원자력학회, 에너지교수협의회 등이 결성됐지만, 한 사람의 열정과 말장난에 속수무책이다. 더 큰 문제는 연구자들의 항의가 심하지 않는 것을 보면, ‘천직’이라는 개념을 남이 지켜줄 것으로 생각하는 분위기이다. 또 다른 분야가 회자되고 있다. 반도체 제작 과정에 들어가는 에칭가스(반도체 회로를 깎고, 불순물을 제거하는 사용) 소재에 관한 것이다. 지난해 7월 일본 아베총리가 ‘주간신쵸’를 통해 이 소재가 ‘우라늄 농축에 사용된다’라고 전제하고 에칭가스 북한 유입설을 들고 나왔다. 일제강점기시대 강제징용 보상 판결이 대법원에서 나와 보복으로 생긴 일이다. 더 구체적으로 2019년 7월 초 집권 자민당의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간사장 대행은 당시 BS 후지 방송의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으로 수출된 화학물질의 행선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사안이 발견됐기 때문에, 금수 조치를 취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에칭가스 수입 물량이 2016년 25.003톤, 2017년 32.410톤, 2018년 38.339t이다. 금액도 2016년 2백 억 달러에서 2017년 1억 3200만 달러로 70%가 늘었다. 당시 청와대는 그 이유를 밝히지 못했다.

한편 정치에 휘둘린 천직의식은 화평법·화관법에서도 나타난다. 2020년 11월 27일 온라인 토론회를 연 한국화학공학회, 한국고분자학회, 한국공업화학회, 한국화학관련학회연합 등 5개 학회 회원 2만 4000명은 “과도한 화학물질 규제는 안전과 화학 산업 모두에 도움이 안 된다”라고 성명을 내고, 화학물질의 평가 및 등록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리관리법(화관법)의 재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 발단은 2012년 10월 7일 대선 전 문재인 대선후보는 경북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 불산가스 누출 피해현장(4명 사망)을 방문하고, 이듬해 4월 화평법(심상정 정의당) 5월 화관법 개정안(신계륜, 민주통합당) 등이 발의, 통과시켰다. 중앙일보 김준영 기자(2019.07.13)의 기사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는 ‘손톱 밑 가시’라며 2013년 8월 28일 10대 그룹 총수들과 청와대 오찬을 한 자리에서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입법이 되면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독소조항은 없는지 한번 검토할 필요가 있고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했지만, 야당과 시민단체는 아예 묵살했다.

정치가 원전뿐만 아니라,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맥을 자른다. 문재인 청와대가 주도적 역할을 했으니, 어느 누구도 언급을 피한다. 정치에 휘둘린 청년 일자리와 천직의식이다. 공산주의, 제3세계에서 볼 수 있는 일이 국내에서 벌어진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