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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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11월 23일 여권의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알려진 강창일 전 의원을 주일 대사로 내정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달 국정원장 및 한일 의원연맹 소속 의원들의 일본 방문에 이어 주일본 대사를 교체하는 것은 내년 도쿄 올림픽에 앞서 꼬인 한일 관계를 풀어 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강창일 내정자에 대해 아직 접수국(일본)으로부터 아그레망(외교사절 접수 동의)을 받지 않은 상태이다. 1961년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은 ‘파견국은 외교사절단의 장으로서 접수국에 파견하고자 하는 자에 대해 접수국이 동의하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규정해, 아그레망을 구하는 것을 파견국의 의무로 하고 있다. 즉, 파견국이 파견코자 하는 외교사절을 접수국은 거부할 수 있으며, 이러한 거부가 있음에도 파견하면 당연히 양국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파견국은 외교사절의 임명에 앞서 상대방 정부의 동의를 구하고 있다. 접수국 정부에 아그레망을 요청하면 통상 2주에서 4주 정도 후 회답을 받는다. 파견국 정부는 아그레망을 접수하면 내정 사실을 대외적으로 발표하고 국내법상 임명 절차를 밟는다.

강 내정자의 경우 한국정부가 일본 정부로부터 아그레망을 받기도 전에 내정 사실을 발표한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12월 2일 정례 브리핑에서 강창일 주일 대사 내정자에 대해 대사에 어울리는 인물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어울리는지 어울리지 않는지는 아그레망 이야기가 포함된다”고 하고 “사안의 성격상 내가 여기서 논평할 일이 아니다”라고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일본 정부가 아그레망을 거부할 가능성은 희박하나 강 내정자를 그리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속내를 드러내는 발언으로 들린다.

다음으로 강 내정자는 12월 1일 요미우리,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는데 대사 내정자인 상태에서 일본 언론의 취재에 응한 것이 적절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가 내정 사실을 발표한 마당에 일본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기가 어려웠을 것이나 일본 언론에 대해 아그레망이 나올 때 까지 기다려 달라고 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나아가 강 내정자는 인터뷰 질문에 대해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를 놓고 외교부와 사전에 충분히 협의했는지 묻고 싶다. 그가 4선의 정치인이라 할지라도 대사는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고 그 언행에 있어 정부의 지시를 따른다는 기본적인 것을 잠시 망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현재 한·일 관계가 매우 경색돼 있는 만큼 말 한마디 한마디에 아무리 신중을 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겠다. 이런 점에서 구체적으로 강 내정자의 답변을 살펴보자. 그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나 기업이 우선 배상금을 지급하고 추후 일본 기업에 배상금을 요구하는 방안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한국 정부가 그러한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가? 현재까지는 한국 정부가 징용 배상 문제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진 바 없다. 그의 발언이 외교부와 사전 협의한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양국 정부가 문제를 풀어 나가는 데 있어 혼란을 가중시키지 않았을까 우려된다.

그리고 지난해 2월 문희상 국회의장이 위안부 문제에 있어 일왕 사과를 요구한 직후 강 내정자가 국내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천황이 과거 위안부였던 사람들을 위문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였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문 의장의 생각을 설명했을 뿐이라고 발을 빼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문희상 의장의 발언에 대해 ‘일본에서 천황의 존재, 그리고 역할에 대해 무지한 발언이었다’고 한 것이다. 문 의장은 강 내정자에 의해 졸지에 이웃나라의 사정에 대해 무지한 3부 요인이 돼 버렸다. 강 내정자의 발언은 일본 정부의 아그레망을 의식하고 한 발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본 정부는 강 내정자의 발언에 대해 고맙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가벼운 사람이 대사로 오는구나 생각하지 않았을까?

강 내정자의 부적절한 언행은 현 정부의 대일 외교의 난맥상의 한 단면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법원의 징용배상판결의 이행 요구에 대해 일본이 응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그간 그렇게 밀어붙인 것인가? 최근 일본에 대한 일련의 움직임은 진정으로 한일 양국 관계를 복원하고자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도쿄 올림픽을 이용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극적인 장면, 즉 남·북·미·일 정상회담 같은 정치적인 쇼를 만들려다 보니 일본의 협조가 필요해 꼬리를 내리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그렇다면 현 정부의 그간의 대일본 정책은 너무나도 근시안적이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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