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슈베르트와 특별한 만남을 가진 이후 의사는 베토벤의 친구들에게 이제 나을 가망이 없을 거라고 말했으나 베토벤에게는 곧 나을 것이라고 위로하였다.

그러나 의사가 그렇게 말하였지만 베토벤은 이제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단계까지 이르렀으며 수첩에 글을 써도 읽지를 못하였다.

1827년 1월 3일 베토벤은 조카 카를을 자신의 유산(遺産) 상속인(相續人)으로 정하였으며, 그는 라인강변의 어린 시절의 친구들을 그리워하였다.

그해 3월 24일, 음악가(音樂家)로서, 한 인간으로서 극한의 시련을 극복하고 음악 예술을 최고의 경지까지 승화시켰던 베토벤은 정신을 잃었으며, 이틀 후인 3월 26일, 눈보라와 함께 천둥과 번개가 치던 날에 삶의 굴레에서 벗어난 베토벤은 57년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쳤다.

이와 관련해 그의 장례식(葬禮式)에는 빈의 모든 학교가 휴교한 가운데 2만명이 넘는 군중이 모여 그의 서거(逝去)를 슬퍼하였으며, 그의 정신은 음악을 통하여 영원히 살아 전 인류의 위대한 벗으로 남아있다.

베토벤은 생전(生前)에 9곡의 교향곡(交響曲)을 작곡하였는데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에 비하면 작품의 수가 많지 않지만 특히 제3번 ‘영웅’을 비롯하여 제5번 ‘운명’, 제6번 ‘전원’, 제9번 ‘합창’ 같은 명곡(名曲)을 후세(後世)에 남겼다.

또한 베토벤은 5개의 피아노 협주곡과 1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3중 협주곡을 작곡하였는데 이 작품들은 모두 협주곡의 가장 중요한 레퍼토리들이라 할 수 있다.

피아노 소나타는 ‘비창’을 비롯하여 ‘월광’ ‘발트슈타인’ ‘열정’과 같은 주옥같은 작품들을 포함하여 모두 32곡을 작곡하였으며, 실내악에서도 현악4중주와 바이올린 소나타, 첼로 소나타 등 명곡을 남겼다.

한편 오페라는 유일하게 ‘피델리오’만을 작곡하였는데 작품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다.

‘피델리오’는 존 라이트너의 대본으로 된 2막의 오페라로서 당시 빈 극장의 의뢰에 의하여 작곡하였으며, 1805년에 초연하였으나 공교롭게도 나폴레옹군(軍)이 빈을 점령하였을 때였으므로 흥행은 실패로 끝났다.

본래 초연(初演) 때는 3막이었으나 이듬해에 2막으로 다시 수정하여 공연하였는데 정절한 부인 레오노레가 남편 플로레스탄을 옥중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남장을 하고 피델레오라는 이름으로 변명한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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