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외고는 3년 전부터 ‘스승 존경 풍토 조성’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선희 학부모, 김지수 학생, 김강배 교감. ⓒ천지일보(뉴스천지)

캐리커처 전시·허그데이·구두닦기 등 기념행사 다양
이벤트 행사보다 사제 간 돈독한 정 쌓는 분위기 형성

[천지일보=장요한 기자] 스승의 은덕을 기리는 ‘스승의 날’이 올해도 돌아왔지만 처음 제정 취지와는 달리 그 의미가 퇴색돼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한다.

스승의 날만 되면 촌지나 기부금 이야기가 빠지지 않자 이날을 학교장 재량으로 휴교일로 지정하는 학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최근엔 사제 간 불화 소식이 곧잘 사회뉴스로 등장하면서 교육계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부정적이다.

옛 선조시대에도 사제지간의 불화가 있었을까. 조선시대에는 제자가 잘못하면 스승이 대신 벌을 받았다고 한다. 일례로 세종 24년(1442) 성균관 유생들이 산에 놀러 갔다가 승려들과 싸운 사건이 발생하자 나라에서는 이 책임을 물어 스승을 의금부에 가뒀다.

이에 당시 성균관 정원 200명 중 절반에 가까운 90명의 생원들이 스승을 풀어 달라며 목숨을 걸고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임금은 스승에게 책임을 물어 제자들이 스스로 반성하고 스승을 높이 받들게 하기 위해 그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이 시대엔 사제 간 관계가 엄격해 제자가 스승에게 대드는 것을 엄청난 죄로 여겼다. 성종 4년(1473) 기록에는 스승에게 큰소리로 내거나 버릇없는 말을 하고 수업을 듣지 않은 유학생들에게 성종이 벌을 줬다는 내용이 있다. 이들에게 내린 벌은 태형 중 최고의 형벌인 곤장 100대였으며 과거시험을 치르지 못하게 해 양반으로서의 지위도 빼앗았다.

관계가 엄격하기는 했지만 한 번 맺은 스승과 제자의 인연은 죽을 때까지, 심지어 자손대대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서로에 대한 책임과 사랑이 깊었다.

시대가 흐르면서 이같이 엄격한 사제지간의 관계가 드물어지긴 했지만 서로에 대한 정과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최근 체벌금지와 학생인권조례 제정 움직임, 잦은 교육정책의 변화로 인해 학교 현장에서 교사의 권위가 추락했다는 교원 설문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스승 공경 풍토를 확산시키고자 힘쓰는 학교들도 많다.

참스승다솜운동중앙회(참다운) 권길중(전 영등포교 교장) 회장은 40년 넘게 교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안타까웠던 심정을 ‘참스승다솜운동’에 담았다. 이 운동은 학부모의 교사 사랑, 교사의 학생 사랑, 학생의 스승 존경을 통한 학교 교육 정상화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운동이다.

권 회장은 학부모와 학생은 물론 사회 전반에 교사들에 대한 믿음과 존경이 필요하다고 느껴 이 운동을 전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운동을 통해 생겨나는 교사들 자긍심과 학생들에 대한 사랑이 공교육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외고(교장 김희영)는 3년 전 학교 내 개설된 ‘샤프론봉사단’을 통해 이 운동이 전개되자 적극 수용했다. 이 학교 학부모로 구성된 샤프론봉사단의 이선희 단장은 “‘참스승다솜동’을 통해 스승 공경 풍토는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며 “학부모와 학교 간 거리가 좁혀지면서 선생님들을 신뢰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외고 샤프론봉사단은 수시로 ‘우리는 선생님을 믿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당신의 교육에 대한 열정을 믿습니다’ ‘선생님을 사랑한 만큼 내 아이의 실력이 자란다’ 등의 다양한 피켓을 들고 거리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또한 학생들도 직접 이 운동의 취지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동참 서명운동을 하고 있으며 이 운동의 뜻에 동의하는 교사들도 참여하고 있다.

최근 스승의 날을 기리는 행사들이 사라져 가는 추세에 대해 김강배 서울외고 교감은 “최근 스승의 날 행사를 따로 하지 않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선생님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순기능이 나타난 것도 사실이지만 이날을 쉬는 날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하며 “초중고 은사들을 찾아뵈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감은 “교사의 말 한마디도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며 “아이들의 장래를 책임지고 있다는 소명감을 갖고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하면 아이들도 따라온다”고 강조했다.

김지수(19) 군도 “공부를 통해 우선적으로 선생님과의 유대관계가 쌓인다”며 “하지만 공부 외에도 고민상담도 들어주시고 우리를 이해해주실 때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소통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 학생들이 선생님을 응원하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참스승다솜운동에 참여했다. (서울외고 샤프론봉사단 제공)
스승의 날을 맞아 이벤트성 행사 대신 스승과 제자가 함께 학교문화를 만들어나가려는 학교도 늘어나고 있다.

안성 명륜여중(교장 정혁진) 학생회는 스승의 날 즈음에 일명 ‘허그데이(포옹하는 날)’을 선포해 전 교과 선생님을 찾아가 포옹하는 시간을 갖는다.

박미정(18) 학생회장은 “3년 전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날을 만들자는 의견 중 ‘허그데이’가 좋은 호응을 얻어 시작하게 됐다”며 “무섭게만 보이던 선생님께서도 다정히 안아주셔서 마음이 따뜻했다”고 말했다.

이정덕 명륜여중 학생부장은 “처음엔 학생들이 ‘감사하다’ ‘고맙다’ ‘존경한다’며 포옹을 할 때 쑥스럽고 어색해 피해 다니기도 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다”며 “선생님들도 학생과 돈독한 정을 쌓을 수 있어 기분 좋아한다”고 말했다.

학교문화로 자리 잡은 ‘허그데이’는 올해도 진행되며 만화동아리를 주축으로 선생님들의 특징을 살려 그린 캐리커처 그림 전시회도 다음 주까지 열린다.

스승의 날을 맞아 이색 이벤트로 선생님들의 구두를 닦아주는 행사를 연 학교도 있다. 대전 서일여고(교장 김용한) 학생회는 8년 전부터 모든 선생님들의 구두를 닦으며 은혜를 기리고 있다.

이 문화의 주축인 동아리 RCY의 이세윤(19) 부회장은 “1년에 한 번이지만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어 기쁘다”며 “후배들에게 학교전통으로 물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황원주 대전 서일여고 교감은 “학생들이 기특하고 고맙다”며 “요즘 사제지간 불화 뉴스가 많이 보도돼 안타까운데 교육계 전체로 확대 재생산 되는 것은 더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황 교감은 또 “사제지간 정을 나누고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행사는 전국적으로 많이 확산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경기도교육청에서는 ‘교사들 기 살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도교육청은 이달 각 지역 6개 학교를 돌며 ‘스승 존경 나라 사랑 음악회’를 개최한다.

음악회는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가곡을 비롯해 한국의 대표적인 계절별 가곡, 창작곡인 독도아리아 등으로 구성된다.

이 밖에 도교육청은 이달 말까지 학교별로 ▲은사님 찾아뵙기 ▲감사 편지 보내기 ▲선생님 캐리커처 그리기 ▲감사 전화·문자 드리기 ▲사제동행 걷기대회 ▲‘선생님 사랑해요’ 영상축제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교육과학기술부는 스승의 날을 기념해 공적이 큰 교원 6416명에게 훈장·포장·표창을 전달한다. 이 중 가장 격이 높은 홍조근정훈장(3급)은 ‘공단 학교 나무심기’로 호평을 받은 김종원 교장(경남 가람초) 등 5명이 받는다.

또 판소리 교육의 대가인 노동은 교수(중앙대, 녹조근정훈장)와 중국 현지 한국 학교를 정상화한 김계순 교장(연대한국학교, 근정포장), 연평도 포격 사태를 잘 이겨낸 김영세 교장(연평고, 대통령 표창) 등이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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