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not caption

“검찰이 감당하지도 못하는 권한을 움켜쥐고 사회 주동 세력인 체하던 시대는 저물어야 한다.” 매우 도발적인 발언이지만 이 말은 대검찰청 임은정 부장검사가 지난달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임 부장검사의 성찰적 고백에 동의하는 검찰 구성원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검찰 권력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됐다. ‘검찰공화국’이란 말은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니다. 비록 대통령 임기 말이긴 하지만 이젠 대한민국 국정을 책임진 청와대 권력과 맞서는 데까지 올라갔다.

예년 같았으면 검찰 권력은 대통령 임기 말 쯤에 ‘살아있는 권력’을 겨냥하면서 동시에 적절한 ‘타협책’을 만들어 냈다. 그런 타협책을 통해 검찰 권력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검찰공화국 시대를 열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달랐다. 임기를 불과 일 년 반쯤 남겨 놓은 청와대 권력이 검찰 권력과의 타협은커녕 허구한 날 ‘검찰개혁’을 외치고 있으니, 검찰 내의 불만과 분노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조만간 검찰 권력을 견제할 공수처가 본격화될 예정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끝까지 싸우는 핵심 배경이다. 검사들, 심지어 추미애 장관과 호흡을 맞췄던 일부 검사들까지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것도 그 연장에 있을 뿐이다. 그만큼 검찰조직의 힘과 그들의 기득권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거듭 확인하는 대목이다. 역대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왜 제대로 해내지 못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생생한 모습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이른바 ‘추․윤 갈등’의 후폭풍이라 하겠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최하를 기록하고, 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에 밀렸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물론 일시적인 현상이지만 그 메시지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갈등 국면이 길어지면 국민은 지치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청와대 권력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집권당은 뭐하느냐는 분노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리고 추미애 장관을 향한 불만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반면에 윤석열 총장은 그럼에도 약자의 모습이다. 청와대 권력과 싸우는 모습은 특히 야권 지지층에겐 ‘희망’으로 보일 수도 있다. 졸지에 윤 총장이 대선주자 반열에서 ‘빅3’로 급부상한 이유인 셈이다. 그러나 그것이 ‘허상’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제 비정상의 시간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을 때다.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이대로 ‘추․윤 갈등’을 더 끌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검찰개혁이라는 본질은 뒷전이고, 지루하고도 소모적인 공방전만 연일 반복되고 있다. 마침내 추미애 장관도 결심한 듯 윤석열 총장 징계 카드를 뽑았다. 징계위 의결을 거쳐 문재인 대통령에게 해임 등 중징계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에 맞선 윤 총장도 ‘헌법과 법치주의’ 운운하며 끝까지 맞설 태세다. 설사 해임이 되더라도 행정심판 등으로 맞서겠다는 생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윤석열 총장은 야권 지지층은 몰라도 국민 전체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검찰이 ‘정당’이 아니라면 이것은 검찰조직에겐 엄청난 비극이다. 검찰이 특정 대선주자를 키워내고 특정 정당의 언행과 같이 치부된다면 누가 이를 검찰이라고 부르겠는가. 정치적 중립성을 스스로 짓밟는 자충수에 가깝다. 추미애 장관이 검찰을 ‘검찰당’으로 비판한 대목도 눈여겨 봐야 한다. 이대로 간다면 검찰조직, 아니 ‘검찰당’이 파국으로 갈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최근의 상황과 관련해서 윤 총장이 더 엄정하고 냉철하게 판단할 대목이다. 과연 끝까지 가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지, 그래서 정말로 대선에 출마할 수 있을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 사이 검찰조직은 뭐가 될 것이며 동시에 국민이 입을 피해는 또 어떻게 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모든 것을 문재인 정부 탓, 또는 추미애 장관 탓으로 떠넘기면 그것을 국민이 그대로 믿어줄 것으로 본다면 무지하거나 무능한 것이다.

윤석열 총장이 최근의 사태를 직시한다면 이쯤에서 ‘자진 사퇴’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검찰개혁의 성과를 내야 할 정부에도 걸림돌이 되지 않고, 검찰조직이 더 붕괴하는 것도 막을 수 있는 길이다. 특히 ‘추․윤 갈등’에 지쳐있는 국민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어쩌면 윤 총장에게도 최소한의 명예로운 길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싸워서 얻을 게 없다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과 국민을 위해 스스로를 던지는 것이 책임자의 자세다. 무턱대고 여당 편을 들거나 윤 총장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눈으로 현 상황에서의 바람직한 길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다.

법무부에서 징계위가 열리기 전에 자진 사퇴 입장을 밝히는 것이 그나마 제일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징계위 소집도 철회될 것이며, 더 이상의 소모적인 갈등이 촉발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그것이 어렵다면 징계위 결정을 지켜본 뒤, 문재인 대통령의 최종적인 결정 이전에 사퇴를 하는 것도 차선책이다. 대신 윤 총장의 불명예와 검찰 내부의 갈등이 더 커지게 된 것은 감수해야 할 몫이다. 물론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의 최종적인 판단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징계위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며 행정법원에 심판을 요청하는 경우다. 이럴 경우 검찰에 대한 신뢰는 물론 그 조직을 송두리째 흔들면서 ‘검찰당’의 실체를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총장이 더 이상 좌고우면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충성해야 할 조직은 검찰이 아니다. 끝까지 지켜야 할 조직은 대한민국 공동체임을 명심해야 한다. 부디 최악을 피하고 그나마 최선의 길을 택하길 국민의 한 사람으로 기대해 본다. 연말연초 개각 때엔 추미애 장관도 퇴진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민심이다. 정부와 검찰은 ‘민심의 바다’에 떠 있는 조그만 ‘배(舟)’에 불과함을 명심해야 한다. 다시 임은정 부장검사의 성찰이 가슴에 파고든다. “검찰의 시대는 결국 저물 것이고, 우리 사회는 또다시 나아갈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