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은 미쳐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권이 가장 신뢰하는 두 사람을 어쩌면 가장 중요한 요직에 임명 해놓고, 두 사람의 기 싸움을 속절없이 지켜보게 하면서 국민들의 멘탈을 붕괴시키고 있다.

우리 속담에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다. 현재 문재인 정권의 수장이며 두 사람을 임명한 임명권자는 정작 침묵만을 유지하며 이 속담에 솔선수범하는 모범생이다.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라는 답도 없는 논쟁거리를 생산해 한껏 진영싸움의 최고조로 끌어 올려놓은 후, 문 대통령은 현 정권의 주특기이기도 한 묵비권만을 행사하고 있다.

아수라장이 된 작금의 현실이 그의 계획된 작품일지 모를 거라는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어도 침묵은 영원하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찾아왔고, 민생은 도탄에 빠져 백성들은 가슴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는데도 방치하는 것인지 회피하는 것인지 즐기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침묵은 이 순간도 진행형이다.

영축산에서 석가세존의 미소만을 보고도 스승의 의중을 알아들은 가섭의 미소는 ‘염화시중의 미소’가 되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의미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는 것처럼, 문 대통령의 침묵만으로도 문 대통령의 의중을 간파한 독심술에 능한 추 장관의 정권 옹위 차원의 폭거는 실로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시무 7조로 이름을 알린 조은산씨는 여지없이 “침묵만으로 명령한 文”이라는 자기만의 독특한 표현으로 일침을 가했다.

이상민 의원(더불어 민주당)은 한마디로 현 사태를 두고 “지긋지긋하다”고 까지 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어쩌면 가장 솔직하고 적절한 일성(一聲)이 아니었나 싶다. 국민들에겐 통쾌한 일성이었지만, 같은 당 극렬지지자들의 예정된 돌팔매는 사정없이 날아들었으니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

뿐만이 아니라 젊은 학생들의 눈에 비친 현 정권의 모습은 어떠할까.

서울대 스누라이프 사이트 내 ‘베스트 게시물’에 오른 현 정부 비판 글엔 느닷없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소환 돼 연일 회자되고 있다. 게시판에는 “박근혜 대통령님 미안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전 정부 인사들의 행보가 현 정권에 비하면 낫다며 당시 비판했던 행위에 대해 사과한다는 글이다. 그러면서 하나하나 그 근거까지 제시했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극렬지지층의 사정없는 난도질이 두려워 드러내지 못할 뿐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는 정부와 여당 내 인사들이 하나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금 정부와 덩치만 커다란 거대 여당은 하고 싶은 말도, 주장도 못하며 ‘무조건’이라는 요즘 대세인 유행가 제목처럼 무조건 지지하고 따라야 하고 반기를 들어서도 안 되는 봉건시대로 회기하고 있다. 반면에 국민 눈치만 보며 잔뜩 주눅 들려 볼품없이 허약하고 나약하기만 한 야당의 모습은 어떠한가. 수권정당은커녕 자기 수(數)도 유지하고 지켜갈지 의문스럽다. 이게 현재 대한민국 국회의 부끄럽고 참혹한 진면목이다.

자신들의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도 할 수 있다는 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된 집단이 바로 현 정권이 아닐까. 윤리, 양심, 도덕, 원칙, 법도 필요 없는 위력(威力)의 대한민국을 견인해 가며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온 나라의 기틀마저 거침없이 붕괴시켜가고 있다.

어쩌면 국가관과 세계관과 역사관이 아닌 이처럼 자기 아집과 이념으로 똘똘 뭉친 정권과 집단이 또 있었던가.

무엇 때문인가. 무엇을 위한 뻗치기인가. 국민도 국가도 아닌 부정과 불법과 무능을 덮어보겠다는 얄팍한 속셈인 것을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 돼 버렸다. 해(日) 아래 무엇을 숨길 수 있겠는가.

입으로만 민생민생 하지 말고, 국민들 혈세로 정권 재창출 야욕에만 낭비하지 말고, 눈을 들어 저 넓은 세상을 보라. 민생과 국가 번영엔 강 건너 불구경하는 정권이여, 살다 살다 그대들 같은 맹탕 정부는 처음인 줄 아노라.

하얀 밤 까맣게 태우며 하루살이같이 내일 하루를 걱정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민초들은 안중에 없는 그대들이여, 된서리 맞기 전에 제발 정신 좀 차리라.

촛불 정부라는 자화자찬과 자기 체면에서 제발 벗어나, 촛불은 들불처럼 옮겨붙는다는 이치부터 깨달으라.

또 한 가지는 무덤은 남이 파야 하거늘 자기가 파서야 되겠는가.

저지른 사람이 스스로 해결하라는 ‘결자해지(結者解之)’가 답이며, 국민들 앞에 석고대죄가 답이라는 답을 일러준다.

그것만이 비난의 말굽소리 멈추게 하는 첩경이며 사는 길이다.

구중궁궐 높은 곳 경복궁의 지난날 아픈 사연에서 ‘타산지석(他山之石)’ 삼으라.

ⓒ천지일보 2020.11.29
ⓒ천지일보 202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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