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른바 ‘추․윤 갈등’이 갈 데까지 가 버렸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25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직무배제’라는 강수를 뒀다. 게다가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절차까지 밟고 있다. 윤 총장을 벼랑 끝으로 내몬 셈이다. 하지만 윤 총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법적 조치를 강구해 추 장관의 부당한 조치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서 추․윤 갈등은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여부와 법무부 조치에 대한 사법적 판단에 맡겨지게 됐다.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총장 간의 갈등,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의 ‘파워게임’은 이제 지루하다 못해 꼴불견이 되고 말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국민의 일상은 너무도 피곤하고 고달프다. 이런 시점에서 법무부 내부의 두 수장 간 갈등을 곱게 볼 이유가 없다. 모든 뉴스를 잠식하며 추미애와 윤석열 두 사람의 이름을 벌써 수개월 째 듣고 또 들어야만 했다. 정치권도, 언론도, 여론도 심지어 검찰도 양쪽으로 갈렸다. 이 또한 한국정치의 막장극인 ‘진영싸움’으로 비화된 지 오래다. 졸지에 윤 총장이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급부상하는 코미디 같은 일도 벌어지고 있다.

좀 더 냉정하게 보자. 어느 한 쪽 편에 선다면 이 또한 진영대결의 희생양이 될 뿐이다. 일방적으로 추미애가 옳다거나, 윤석열이 잘한다고 보는 것은 금물이다. 더욱이 양쪽 다 문제라는 식의 하나 마나 한 얘기는 사건의 본질을 은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추․윤 갈등의 본질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그 본질을 호도하는 잡다한 언행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말이 꼬리를 물고, 그 꼬리가 다시 말을 만들어 내는 식의 소모적인 공방전의 악순환을 끊어내지 않으면 이 싸움은 급기야 국민을 벼랑 끝으로 내몰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자칫 이 싸움판이 차기 대선까지 간다고 생각해 보자. 끔찍하다 못해 한국정치의 파국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뿐이다. 국민이 왜 그런 부담을 져야 하는가. 이제 더 이상은 안 된다.

추․윤 갈등의 핵심은 ‘검찰개혁’이다. 검찰개혁의 성과를 반드시 만들어 내려는 추미애 장관과 검찰조직의 이익을 끝까지 지키려는 윤석열 총장의 저항에서 모든 것이 파생됐다. 거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아끼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건이 더해지고, 울산시장 선거, 금융사기 사건 등이 결합되면서 사건이 복잡하게 전개된 것이다. 이에 검찰조직의 이익을 지키려는 윤 총장이 정권의 핵심부를 겨냥하면서 윤 총장은 단박에 청와대 권력 또는 ‘친문’에 맞서는 ‘전사’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다. 역대 정권의 사례를 보면 집권 4년 차의 청와대 권력이 먼저 타협했다. 검찰조직의 이익을 지켜주는 대신 청와대 권력 등 집권세력의 안정을 받아내곤 했다. 검찰은 오랫동안 이런 방식으로 ‘괴물’이 돼버렸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달랐다. 타협이 아니라 끝까지 검찰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과 일부 검사들의 조직적 저항은 그 산물이다. 여기에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이 윤 총장 편이 돼주니 윤 총장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공공연히 ‘정치’를 말하는가 하면, 마치 유세하듯 일부 검찰청을 돌며 강연도 했다. 유력 대선주자 등극을 즐기는 듯 퇴임 후 정치권 진입의 길도 스스로 열어놓았다. 법치 행보가 정치 행보처럼 비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윤 총장 자신에게는 몰라도 그가 몸담고 있는 검찰조직에게는 치명타가 될 것이라 사실을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인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내달 2일 윤석열 총장에 대한 징계심의위가 열릴 예정이다. 설사 징계가 결정되더라도 윤 총장은 사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끝까지 가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길대로 가야 한다. 징계심의위에서 어떤 결론이 날지, 그 결론이 법적 절차를 어떻게 밟을지 그리고 직무정지의 적법성 문제까지 사법부의 판결을 받아내는 것이 현시점에서는 불가피해 보인다. 어중간한 타협은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법을 집행하는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사법적 판단까지 걷어차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금처럼 문 대통령이 추․윤 갈등에 대해 침묵을 지켜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야당은 물론 언론 심지어 여권 일부에서도 같은 말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문 대통령이 나서는 것이 과연 적절할까. 결론은 문 대통령이 나서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침묵이 더 낫다. 문 대통령의 침묵이 주는 메시지가 더 강력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어떤 말을 하면 그것이 하나의 ‘가이드라인’이 됐다고 비난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민의힘과 일부 언론, 심지어 검찰 내부의 극심한 반발을 촉발시킬 것이며 급기야 진영대결을 더 극대화시키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나 일부 언론에서 문 대통령의 개입을 촉구하는 것도 실상은 추․윤 갈등의 ‘해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싸움을 이제는 추미애 장관이 아니라 문 대통령과의 싸움으로 격상시키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 판이 커지고 정권의 운명을 건 싸움판을 벌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런 저급한 노림수에 문 대통령이 화답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침묵은 판을 키우지 않겠다는 뜻 외에도, 이젠 사법적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 이후에는 추미애 장관이나 윤석열 총장 모두 스스로의 거취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은 조금 피곤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긁어 부스럼 만드는 일은 금물이다. 사법적 판단이 나오면 그 결과에 따라 더 엄중하고 혹독한 책임을 물으면 된다. 바로 그 일을 문 대통령이 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이쯤에서 검찰개혁, 특히 공수처 출범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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