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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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가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이 치르는 ‘2023학년도 정시모집에 학교 내신 성적을 반영하는 교과평가를 시행하겠다, 수시에만 있던 지역균형전형도 정시에 신설해 학교별로 2명 이내로 지원받아 수능 60점, 내신 40점을 반영해 선발한다’라고 발표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동안 100% 수능만으로 뽑던 정시모집 1단계에서 수능만으로 2배수를 뽑은 후, 2단계 평가에서 수능 성적 80점에 내신점수 20점을 반영한다. 내신 성적은 이수 교과목과 성취도, 학업 수행 내용 등을 보고 면접관 2명이 평가해 최고 A·A등급은 5점, A·B는 4점, B·B는 3점, B·C는 1.5점, C·C는 0점으로 총 5점이다. 2015학년도까지 정시에 내신을 반영하다 없앤 이후로 8년 만에 부활시킨 셈이다.

정시가 가장 공정하다는 사회적 요구로 대통령도 “정시확대 정책을 추진하라”라고 했고 교육부도 정시확대 정책을 유지해왔는데 정면으로 반하는 정책을 갑자기 발표하는 이유가 의문이다. 대학입시가 아무리 대학 자율에 맡겨졌다 해도 서울대 입시는 다른 대학 입시전형에 도미노처럼 영향을 미치는 만큼 좀 더 신중해야 한다. 급기야 서울대 입시안을 철회해 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오고 학생들도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번 입시제도 변경의 가장 큰 피해자인 현재 고1 학생들은 정시확대라는 교육정책 방향을 믿고 진학할 고교를 선택했다. 입시제도를 변경하려면 최소한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 고교를 진학하기 전인 중3부터 적용하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의 정책을 믿고 진학할 고교를 이미 선택하고 공부의 방향을 정해 생활하던 학생들이 혼란에 빠지는 갑작스러운 제도 변경은 누가 봐도 잘못이다. 누구에게 특혜를 주려는 제도 변경인지 의구심마저 든다.

일부 전문가는 이번 방침이 학교 수업을 등한시하고 수능준비에만 올인하는 학생을 수업에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어 학교 공교육 정상화에 효과가 있다고 평가한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평가다. 일반고에서는 수시에서 상위권 학생을 명문대 진학시키기 위한 내신 밀어주기가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내신이 좋지 않은 하위권 학생이 반전의 기회를 잡기 위해 정시를 지원하는데, 정시마저 내신을 반영하면 하위권 학생들은 반전의 기회조차 날아가 버린다. 한순간 방황하며 학교공부에 조금 소홀했던 학생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또는 재수해서라도 대학 진학을 원하면 노력한 만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통로는 남겨둬야 한다.

내신점수를 반영하면 더 큰 문제는 내신점수의 50% 이상이 수행평가여서 많은 학생이 내신점수를 잘 받기 위해 수행평가에 매달리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 수행평가를 부모나 사교육의 도움을 받거나 잠을 줄이며 만들어 제출하는 게 공공연한 현실인데 이런 부작용을 간과했다. 고교생들은 현재도 내신점수를 따기 위해 친구들을 잠재적 경쟁자로 치부하며 학교생활의 추억은 아예 누리지 못하고 불행한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 우수한 학생이 몰려 있는 학교의 내신과 지방의 열악한 학교의 내신 등급을 같게 평가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교사는 내신 등급을 나누기 위해 가르치지 않은 킬러 문항을 내고, 학생은 킬러 문항을 풀기 위해 사교육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 학생부가 생긴 후 교사의 권한이 막강해져 내신을 잘 받기 위해 억지로 교사에게 잘 보이려 노력해야 하는데 정시에서마저 내신을 반영하면 더 심화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수시에서 아빠 찬스, 엄마 찬스, 교무부장 아빠 찬스 등의 불공정 사례로 편법이 통하는 걸 확인했다. 학생부를 이용한 수시제도가 평소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하는 학생에게 유리할 것이란 판단에 도입했지만, 결과는 부모의 재력과 정보력, 비싼 사교육이 가능한 금수저에게 유리한 제도란 게 증명됐다. 아무리 잘 만든 제도라도 비리가 개입될 소지가 확인된 이상은 폐기나 축소해야 하는데 오히려 정시마저 수시화 하려 하고 있다.

정시에서마저 지역균형선발을 추가 도입하는 것도 문제다. 이미 수시에서 지역 안배를 했는데, 부모가 젊은 시절 열심히 노력해 서울에 산다는 이유로 역차별받는 선발을 확대하는 건 불공정하다. 정시는 오직 개인의 실력으로만 평가받을 수 있는 입시제도로 존재하게 둬야 한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학교의 기능이 거의 상실됐다. 온라인 수업으로 학교생활도 제대로 못 한 학교의 내신을 반영한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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