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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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그치고 바람이 불자 가로수 은행잎이 많이도 떨어졌다. 차차 앙상한 가지로 드러나는 걸 보면서 가을이 깊어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너나없이 우울하다. 예년 같았으면 겨울맞이하면서 다소 들뜬 연말 분위기 속에서 다가오는 새해는 여건이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가졌지만 올 연말은 그렇지 못하다. 더욱이 국내 신규 확진자수가 연일 300명대에 이르고, 정부에서는 3차 유행을 우려하는 상태니 우리들을 더욱 불안하게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화이자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코로나 백신 긴급사용을 신청했다는 소식이다. 올해 말쯤 사용승인이 나면 환자들의 치료에 크게 도움을 주고 지구상에서 코로나19 대유행을 종식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게 됐다. 백신이 상용화될 경우 코로나 19 취약층인 65세 이상 고령자에게 예방효과가 클 것이라고는 화이자 측은 밝히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개발 완료단계에 있고 미국에서 하루 1명꼴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가운데 방역 모범국이라 칭송받았던 우리나라에서 확진자가 3만 1천명을 넘어섰고, 사망자수도 510명에 이르렀으니 사회적 거리두기 등 감염예방을 위한 보건수칙을 철저히 지킬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러다 보니 일상생활에서 더욱 주의할 수밖에 없는바, 생각해보면 올해 우리사회는 ‘마스크’와 ‘집콕’ 현상으로 상징되는 한해다. 많은 사람들이 힘든 한해를 보내면서 직장인이 아닌 사람들이 필요 이외의 외출을 자제하고 있으니 집콕이 대세였다. 필자 또한 급한 용무 외에는 딱히 외출할 수 없는 현실적 입장에서 올해는 집에 들어박혀 드라마를 많이도 시청했다. 중국드라마를 좋아해 이것저것 많이 보면서 얼마 전에 재방송된 ‘랑야방-권력의 기록’을 보고 또 봤다. 인가가 있었던 이 드라마를 열 번 정도는 시청한 것 같다. 그래도 볼 때마다 내게 새로움을 주었으니 그만큼 랑야방 드라마의 구성이 탄탄하고 배우들의 연기가 출중해서였다.

보다보다가 볼 게 없어 나중에는 국내방송인 ‘나는 자연인이다’와 ‘다큐 베스트 인간극장’ 5부작을 두루 시청했는데 우리사회에서 외롭게 또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연들로 넘쳤으니 보건재앙으로 어려운 시기의 집콕 생활에서 무료함을 달래준 방송이기도 하다. 필자가 TV방송과 중드를 화젯거리로 삼는 것은 중국방송 전문 채널인 ‘아시아N’에서 지난주 막을 내린 56부작 ‘대성괴(大盛魁)’ 드라마를 보고 느껴지는 게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성괴는 중국 산시(山西)성 상인들이 몽골초원을 대상으로 무역상을 그린 드라마로 그 시대를 풍미했던 대성괴 상단의 이야기다. 흔히 중국 상인이라면 산시성 상인들이 단연 으뜸으로 꼽는바, 전에도 산시성을 배경으로 한 상인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를 재밌게 시청했다. 마찬가지로 그때 드라마를 기억하면서 이번엔 대성괴를 흥미진진하게 봤는데 역시 느껴지는 게 많았다. 예로부터 중국의 유명한 3대상인은 안휘지역의 휘상(徽商), 광둥지역의 차오상(潮商)과 산서지역의 진상(晉商)이다. 산서의 진상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대성괴 상단이다. 중드 56부작 ‘대성괴’는 산서지역의 진상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 거대한 상인 집단을 이끈 단 대성괴의 창업주 왕상경에 관한 이야기다. 무일푼으로 시작한 왕상경은 몽골 대초원으로 가서 온갖 시련과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마침내 몽골 대초원에서 제1상인으로 자리잡았고, 청나라 최대 무역상사의 지위를 굳건히 다졌다. 그로 인해 대성괴 상단은 창업주 왕상경 사후에도 200년이나 번창했으니 그 원인은 창업 이념이었던 거주민을 위하는 위민사상이었다. 매사를 얄팍한 작은 이익의 상술보다는 신의로써 멀리 내다보고 인심(人心)장사를 해왔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의 주무대가 몽골초원이다. 지역주민을 위한 대성괴 활동이 감명받게 하지만 몽골 지도자들의 원주민을 대하는 진정심도 가슴에 울려난다. 지도자는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애민정신이 우선해야 백성들도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애국한다는 것이니, 그 원천은 부족단결이라는 것이다. 부족 단결의 힘은 통치의 순리에서 나오는바 그 순리가 바로 백성을 편하게 먹이고 위험이 닥쳤을 때 적극적으로 보호한다는 것이니, 대성괴 드라마에서 간간이 비춰주는 몽골의 지도자들의 통치 바탕인 애민과 신의를 보면서 우리정치와 경제를 한번 비교해본다.

청나라 최대 무역상인 대성괴 상단의 성공 비결은 신의와 소속 상인을 위해주는 ‘우리정신’이다. 창업주 왕상경은 자신의 아들에게 재산을 상속하지 않고 상단내 가장 부지런하고 지혜와 인성을 겸비한 점주에게 대권을 넘겨줬다. 이는 재벌2세에 이어 3세에까지 세습하는 한국 재벌가의 실상에서 볼 때 느껴지는 게 많다. 이와 함께 몽골초원 지도자의 철학, ‘민심(民心)은 신의(信義)에서 나온다’는 말은 우리 정치․경제 현실에서도 두고두고 곱씹을만한 대목이다. 코로나 시국에 집콕하면서 중드를 통해 정의로운 철학을 알게 됐으니 이것이 위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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