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한마디] 대일 외교 왜 이러나?
[외교 한마디] 대일 외교 왜 이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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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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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측 요인들이 한일 관계를 복원해 보겠다는 목적을 갖고 일본을 방문했다. 박지원 국정원장 및 한일 의원 연맹 소속 의원들이 스가 총리를 예방해 12월 서울에서 개최될 한중일 정상회담 계기에 방한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일본 측이 보인 반응은 한국 측이 징용 배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한 스가 총리의 방한은 어렵다는 입장인 것 같다. 최근 한국이 일본에 대해 구애하는 모습은 2018년 10월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 이후 일본 측의 반발에 대해 얼마 전까지 ‘죽창가’로 대변되는 강경한 자세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러한 태도 변화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리 정부는 징용 배상 문제 논의를 도쿄 올림픽 때까지 동결하고 일단 양국 관계를 복원하자는 것인데 언론 보도에 따르면 도쿄 올림픽 계기에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을 초청해 바이든-김정은 회담을 추진해 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이 북한이 납치한 일본인 문제 해결을 돕겠다는 제의도 했다고 한다.

일본 측이 우리 측의 이런 의도에 대해 과연 호의적으로 반응할 지는 회의적이다. 정작 양국 관계 악화의 핵심 이슈는 덮어 두고 한국의 대북 외교 구상을 추진하기 위해 일본이 협조하라는 것 아닌가? 징용 배상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 정부가 일본 때리기에 앞장 설 때는 언제이고 우리가 아쉬운 상황이 되니까 일본에 대해 ‘잘해 보자’고 덤비고 있는 것이다. 한일 관계의 주도권을 한국이 쥐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2018년 10월 이래 한국 정부는 일본에 대해 갈 때까지 가보자고 했고 일본이 소재·부품·장비에 대해 수출 규제를 하자 대체 수입선을 확보한다고 한동안 국내에서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금년 8월 신일본제철의 한국 내 자산 현금화 절차가 가능해졌으나 현재 사실상 정지상태이다. 한국 정부의 결기가 아직 그 선을 넘기에는 부족한 것일까? 그간 이 문제 때문에 한일 관계가 악화됨으로써 우리가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한일 관계 악화에 대해 누군가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것은 아닐까?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라는 원죄 때문에 한국이 대일 외교에서 도덕적 우위에 있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이 식민지배와 관련해 일본에 대해 주장하는 것 모두가 항상 국제법적으로도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징용 배상 문제는 분명히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해석 문제이고 이 협정은 해석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으면 중재위원회를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한국 측이 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징용 배상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간 이견에 대해 국제사회가 전폭적으로 한국 입장을 지지한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국내 사회에서도 어떤 행위나 사안에 있어 도덕적 비난 가능성과 법적 책임은 별개인 경우가 허다하다.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한국 정부는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근거해 행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러면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은 정부가 복수란 이야기가 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근 한국 측 요청 또는 제의에 대한 일본의 반응은 한마디로 냉소적이다. 우선 도쿄 올림픽 계기로 남북미일 4개국 정상회담 개최를 거론하는 것과 관련해 ‘정치적인 쇼로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무슨 진전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검증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12월 한중일 정상회담 계기 스가 총리의 방한에 관해서는 ‘상식적으로 볼 때 일한 관계가 악화된 상태에서 일본 총리가 잘 될 것이라는 전망도 없이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한국에는 일한 관계가 깨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없어 보인다’ ‘한국은 일본이 받을 수 있도록 스트라이크나 스트라이크에 가까운 볼(해법)을 던지지 않으면 관계가 진전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오늘날의 한국은 과거 일본과 국교 정상화를 협상하던 한국이 아니다. 우리 정부가 국민들에게 수시로 홍보하듯이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인 나라이다. 그런 한국이 언제까지 일본에 대해 피해자 코스프레를 계속할 것인가? 작금의 복잡한 동북아시아 정세는 한국이 한가하게 일본에 대한 해원(解寃) 놀음에만 빠져 있도록 놔두지 않는다. 현재 한국은 19세기 말과는 전혀 다른 도전과 위기에 봉착해 있지 않은가? 역사적 앙금이 있는 나라가 상황에 따라서는 한 편이 될 수 있는 것이 국제사회의 현상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그간 어떤 의도에서건 과도하게 반일 감정을 부추겨 왔다. 정부가 부추긴 반일감정은 일본과 타협하려는 정부의 발목을 잡을지 모른다. 그리고 쉽게 변하는, 가벼운 나라는 아무도 어려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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