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문화칼럼] 권력의 탐욕 화 불러온다
[이재준 문화칼럼] 권력의 탐욕 화 불러온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not caption

‘무(無)’란 불가 수행자의 사유에 속한다. 반야심경은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 인간이 느끼는 모두가 공허하며 형체가 없다’라고 정의했다. 석가는 진정 욕심을 버려야 정토(淨土) 세계에 도달한다고 설법했다.

신라 원효스님은 당나라에 유학을 가려했으나 도중에 포기하고 만다. 무덤 곁에서 잠이 들어 아침에 일어나 해골 물을 마시고는 깨달았다. 어떤 삶이 진정으로 부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천재 스님은 ‘무애(無礙)’의 삶이라고 정의한 듯하다.

원효는 30대까지 산사에서 수학한 후 서라벌에 내려왔다. 그런데 유창한 강론과 뛰어난 인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모양이다. 스님이 명성을 얻자 궁중에서 왕족 앞에서 강론할 기회가 있었다.

스님은 이 자리에서 남편을 잃고 홀로된 요석공주를 만난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었을까. 요석공주는 무열왕 김춘추와 왕비 문희의 소생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스님은 그러나 색계(色戒)에는 단호하지 못했다. 공주도 스님을 보고 난후 상사(想思)에 빠졌으리라. 스님이 먼저 공주를 유혹하는 향가를 지어 부르자 서라벌에 유행하게 된다. 제일 먼저 알아차린 것은 바로 딸의 삶을 걱정했던 무열왕이었다. 원효스님의 요석공주와의 결합은 무열왕의 기지로 비밀리 이뤄진다.

아들 설총을 얻었으면서도 궁중에 갇혀 살 수 있는 무애가 아니었다. 서라벌 승려사회에서 스님의 파계를 비난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스님은 궁중을 나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다.

동두천 소요산에는 원효굴과 공주봉이란 곳이 있는데 두 사람의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스님을 만나러 요석공주가 천리 길을 찾아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효는 공주를 따라 다시 서라벌로 환궁하지 않았다.

스님은 세상을 떠돌며 무애가(無礙歌)를 불렀다. 색주가를 드나들며 가야금을 타기도 했다. 스님이 궁중에서 아름다운 부인과 자녀를 데리고 호의호식하고 살았다면 신라 풍속사의 주인공으로 기록 되었을 게다. 그러나 스님은 무소유의 길을 선택해 불가의 최고 스승이 됐다.

법구경에 이런 말이 있다.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는다.’ 바로 욕심이 영혼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지칭한 말이다. 욕심 없는 승려를 가리켜 바라문이라고 했다.

처음에도 나중에도(于前于後)/ 또 중간에도 갖지 않는다(乃中無有)/ 가진 것도 없고 집착도 없는(無操無捨)/ 그런 사람을 바라문이라 한다(是謂梵志).

베스트셀러 작가 혜민 스님의 부동산 소유와 이중적 생활이 유튜브에 폭로돼 파장이 컸다. 한 방송에서 서울 삼청동 2층 주택과 직원이 많은 사무실이 공개된 뒤 비판을 받았다. 거기다 미국인 현각 스님이 나서 ‘욕심 많은 기생충’이라고 까지 비난했다.

비난이 커지자 혜민은 ‘모든 활동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괴로움과 번뇌는 집착하고 더 많이 가지려는 소유욕에서 비롯된다’고 한 법정스님의 가르침을 늦게라도 깨달은 것인가.

요즈음처럼 정치권력이 과욕한 때도 없는 것 같다. 집권여당은 행정부를 앞세워 부산시장 보선에 대비, 이미 확정된 김해공항을 백지화시키고 가덕도 공항 건설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원칙, 규정 모두를 팽개쳐도 선거만 이기면 된다는 식이 아닌가 싶다. 운동권에서도 ‘탐욕의 기생충’ 같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욕심은 항상 화를 불러오며 권력처럼 허망한 것도 없다. 정치인들이 먼저 ‘무소유’를 배워야 할 것 같다.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