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신틀러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간 슈베르트는 침대에 누워 있는 베토벤을 보았는데, 야윈 얼굴 위에 은백색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었다.

이윽고 신틀러가 베토벤의 몸에 손을 대자 그는 눈을 떴으며, 슈베르트에게 의자에 앉을 것을 권유하였으며 신틀러는 자리를 피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슈베르트는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베토벤에게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으며, 베토벤 또한 젊은 음악가(音樂家)인 슈베르트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단지 슈베르트의 손을 잡고 조용히 흔들었다.

그 이후 슈베르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베토벤의 손에 얼굴을 대고 눈물을 흘렸으니 이것이 바로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음악가였던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베토벤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던 슈베르트는 과연 누구인지 그 생애를 간략히 소개한다.

프란츠 슈베르트는 1897년 빈에서 초등학교 교장의 아들로 출생하였는데 그는 14남매 중에서 12번째였으나 그중에서 5명만 성장하고 나머지 남매들은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가정환경이 그리 행복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8세부터 아버지나 오르간 주자로부터 바이올린을 비롯하여 피아노, 음악이론(音樂理論) 등을 배웠으나 능숙하게 연기하지 못했던 것으로 볼 때 악기 연주에 뛰어난 솜씨를 보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1808년에 왕실 기숙학교에 입학해 여기서 모차르트와 라이벌 관계에 있었던 살리에리의 가르침을 받고 작곡가로서의 재능을 발휘하였다.

1814년부터 부친이 교장으로 재직 중인 학교의 조교사(助敎師)로 일하면서 F장조의 미사곡을 작곡하였다.

이어서 1815년에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인 ‘마왕’ ‘휴식없는 사랑’ ‘들장미’를 포함하여 백 여곡이 넘는 가곡을 작곡하였다.

1817년에 가곡 ‘죽음과 소녀’ ‘숭어’를 작곡하였는데 전자(前者)는 1년 후에 현악 4중주곡의 변주부의 멜로디가 되고 후자(後者)는 2년 후에 채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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