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정의화 국회부의장을 위원장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결의했으나 회의는 불발로 끝났다. 황우여 신임 원내대표와 소장파들이 “비대위에 구주류의 입김이 들어갔다”고 주장하면서 반발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갈등은 당 대표 역할을 거머쥐기 위한 계파 간 주도권 싸움에서 발로했다.

정의화 비대위원장은 9일 첫 회의를 소집하려고 했지만, 비대위원 일부가 불참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회의가 취소됐다. 소장파들은 “당헌 제30조에 의거 새 원내대표가 당 대표의 권한을 대행해야 한다”며 “황 원내대표가 당 대표 권한대행 자격으로 의총을 소집해 비대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 위원장은 지난 8일 황 원내대표에게 안상수 전 대표와의 ‘3자회동’을 제안했으나 황 원내대표는 이를 거부하고 대신 “가벼운 티타임 정도는 가능하다”고 응답했다. 황 대표는 9일 오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선 “비대위가 비대위답게 잘 좀 해나갔으면 좋겠다. 내 일정이 이 모양이라 예의를 갖추고 만나는 것은 좀 오래 걸릴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소장파의 주장에 대해 홍준표 전 최고위원은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맡는 것은 당헌·당규에 어긋난다”고 못 박으면서 “비대위는 직접 당으로부터 선출된 게 아니어서 강제권한이 없다. 임시기구에 불과하며 소장파들이 우려하는 대로 비대위가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는 게 아니다”고 방어막을 쳤다.

현재 소장파는 황우여 체제를 지원하고 있고 황 원내대표는 소장파의 ‘젊은 대표론’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 주류인 친이계는 소장파가 더 이상 당의 혼란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며 진화에 나선 상황이다.
문제는 이 같은 주도권 싸움이 계파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쇄신론’을 부르짖으면서 전면에 나선 새 원내사령탑이 다시 계파갈등을 부추기는 꼴이 된 것이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경쟁을 벌이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여권 내 상황이 묘한 만큼 좋게 비칠 리가 없다.

난맥상도 이쯤 되면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비대위가 당을 바꾸기는커녕 계파 싸움의 근원지가 될 가능성만 높아졌다. 이미 국민은 한나라당의 계파 싸움에 질릴 만큼 질렸다. 이런 맥락에서 구주류와 소장파가 조금씩 입장을 양보해야 한다. 바야흐로 새로운 밑그림이 그려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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