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초빙교수

 “박지성은 한때 사슴피(deer blood)와 삶은 개구리즙(juice of boiled frog)을 먹어야 할 정도로 허약 체질이었지만 성공하고자 하는 꿋꿋한 의지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었고 까다롭기로 소문난 영국 축구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난달 말 미국의 대표적인 신문 <뉴욕 타임스> 인터넷판에 박지성의 기사가 ‘맨체스터에서 박지성의 지위가 올라간다’는 헤드라인으로 실려 눈길을 끌었다. 영국인 프리랜서 축구 평론가 존 듀어든이 서울발 기사로 작성했다. 잉글랜드 현지가 아닌 박지성의 나라, 대한민국의 수도에서 기사를 취재해 작성한 것이 매우 이례적으로 보였다. 기사 내용은 박지성에 대해 긍정적이고 호의적이었으나 미화하는 내용 위주여서 낯간지럽다는 비판도 받았다.

어떻게 해서 이런 기사가 나왔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기사 내용은 맨체스터에서 ‘소리없는 영웅’에서 ‘진짜 영웅’으로 자리 잡은 박지성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었다. 웨인 루니와 같이 기술적인 실력은 없지만 가장 바쁘게 뛰는 공격수, 아시아 선수로 역사상 유럽축구에서 가장 성공한 플레이어, 히딩크 감독과 함께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에 갔다가 무릎부상으로 제대로 뛰지 못해 한때 ‘박 벤치’라는 별명을 들었다가 퍼거슨 감독에 의해 맨체스터에서 우뚝 선 환상적인 프로페셔널 축구선수로 성공한 박지성의 모습을 자세하게 보도했다.

듀어든의 기사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것은 박지성이 몸보신용으로 사슴피와 삶은 개구리즙을 복용했다는 대목이다. 서양 사람들의 비위에 맞지 않는 음식을 체력강화를 위해 먹었다는 것이다. 만약 잉글랜드에서 취재를 했다면 나오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듀어든이 한국인 기자들에 못지않은 생생한 얘기를 담아 기사를 쓸 수 있었던 것은 한국에서 오랫동안 머물면서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한국축구를 사랑하는 대표적인 영국출신의 축구 전문 프리랜서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전 국민이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한국의 역동적인 문화의 매력에 푹 빠지면서 한국 생활을 시작한 그는 한국인 아내를 두고 삼겹살과 육개장을 아주 좋아해 한국사람이 다 됐을 정도다. 영국의 명문대인 런던 경제대에서 역사와 정치를 전공한 38세 듀어든의 축구 칼럼니스트 생활은 영국의 축구 전문지 <포포투>에 기고하면서 시작됐고, 현재는 가디언, AP통신, 오스트레일리아 ABC 라디오, CNN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골닷컴의 아시아 부문 편집장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의 축구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들, 생생한 경험과 뚜렷한 자신의 생각을 보여준 그의 관점은 한국인 독자들에게도 큰 호감을 사고있다. <존 듀어든의 거침없는 한국 축구>라는 책도 냈다.

박지성과 듀어든의 인연은 한국 축구와 영국 축구라는 이음새를 통해 이루어졌다. 박지성은 한국에서 축구 선수로 활약했고 듀어든은 영국에서 축구 평론가 활동을 준비했다. 둘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맺어지기 된 것은 박지성과 한국 축구가 세계화에 성공하면서부터였다. 박지성은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끈 뒤 네덜란드를 거쳐 잉글랜드 맨체스터에 둥지를 틀면서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었다. 듀어든은 축구의 본고장인 영국을 떠나 머나먼 동아시아의 한국에서 축구 칼럼니스트로 한국 축구의 현실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면서 많은 좋은 기사를 작성했다. 한국 축구의 세계화가 이루어낸 성공적인 모습이다.

십수 년 전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세계 축구의 변방에 머물렀을 때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의 축구 콘텐츠가 축구 종주국 영국 기자에 의해 미국 최고의 유력지 <뉴욕 타임스>에 주요 기사로 등장하며 세계 축구계에서 주요 관심사가 될 줄을 말이다.

듀어든은 기사 말미에서 “일본의 우치다 아스토, 중국의 하오 준민, 이란의 알리 카리미 등 독일 분데스리가 샬케에서 뛰고 있는 아시아 선수들이 박지성의 성공 신화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며 박지성 성공 스토리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박지성 등 해외파들이 성공 스토리를 계속 이어 나가고 존 듀어든 같이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 언론인들이 한국 축구에 희망의 불씨를 밝히는 칼럼을 해외 언론매체에 활발히 기고할 때 ‘축구 코리아’는 세계에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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