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수환 추기경이 1985년 11월 13~18일 한국 주교단 교황청 정기방문(로마)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한 사진. (사진제공: 서울대교구)
고 김수환 추기경이 1985년 11월 13~18일 한국 주교단 교황청 정기방문(로마)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한 사진. (사진제공: 서울대교구)

2년간 비행 의혹 진상조사 결과 발표
‘성인’ 선포 적절했는지 회의론 제기돼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시어도어 매캐릭(90) 전(前) 미국 추기경의 아동 성학대 사건 진상조사 보고서가 공개된 뒤 그를 비호했다는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를 성인(聖人)으로 선포한 것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가톨릭계에서 신망이 두터웠던 매캐릭 전 추기경은 1970년대 어린 신학생들과 동침하고 사제들과 성관계를 했다는 등의 의혹이 제기돼 2018년 추기경직에서 면직됐다. 또 작년 초에는 교회 재판에서 유죄가 선고돼 사제직마저 박탈당했다.

교황청은 매캐릭 전 추기경의 비행 의혹에 대해 2년간의 진상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를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간) 공개했다. 450쪽 분량의 보고서 내용은 다소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작고한 요한 바오로 2세는 매캐릭 전 추기경의 관련 의혹을 인지하고서도 진상 파악 등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매캐릭 전 추기경이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보낸 편지에서 “사제와 동침한 것은 사실이나 성관계는 하지 않았다”고 해명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기록돼있다. 이후 미국 일부 대주교 및 주교들의 반대에도 2000년 매캐릭 전 추기경을 미국 워싱턴DC 대주교로 임명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가톨릭 교계제도에서 교황 다음으로 높은 추기경직으로 승진시키는 등 절대적으로 신임했다.

보고서는 매캐릭 전 추기경과의 개인적인 관계가 요한 바오로 2세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며, 사실상 당시의 판단이 옳지 않았음을 시사하고 있다.

교황청의 이러한 보고서를 토대로 가톨릭 교계 안팎에서는 요한 바오로 2세가 당시 제기된 의혹을 경시하는 등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론이 일었다. 이러한 비판은 요한 바오로 2세의 시성(諡聖: 가톨릭에서 특정 인물을 성인으로 선포하는 행위)이 치밀한 사전 조사 없이 지나치게 성급하게 이뤄진 것 아니냐는 논란으로까지 확장됐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사후 9년 만인 2014년 성인으로 선포됐다.

이와 관련 독립적 종교 매체에서 활동하는 톰 리즈 신부는 16일 로이터 통신에 “매캐릭 전 추기경 관련 사안은 요한 바오로 2세의 시성이 너무 성급하게 이뤄졌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요한 바오로 2세의 시성은 교회 내 정치와 더 관련이 있다”면서 “성인은 신자들의 삶의 모델이자 본받고자 하는 대상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모국인 폴란드 가톨릭계를 중심으로 요한 바오로 2세를 두둔하는 쪽에서는 그가 매캐릭 전 추기경의 거짓 해명에 속았다며, 의도적으로 의혹을 은폐하거나 묵살한 게 아닌 만큼 그 사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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