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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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퍼라….’ 이제하 시인이 작사작곡한 ‘모란동백’ 노래 속에 나오는 내용이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이때 가만히 생각해보면 올해는 세상사는 일이 너나 할 것 없이 유난히 고달픈 한 해인데, 그것은 분명 코로나19라는 보건재앙으로 인해서기도 하다. 지구상에서 221개국 5500만명 넘게 확진 판정을 받았고, 최근에도 1일 신규 확진자 수가 44만명에 이르고 그 중 미국에서만 13만명 정도라 하니 이쯤 되면 공포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상황이니 올해의 최대 이슈가 ‘코로나19’인 것은 불문가지다. 전쟁보다 더 참혹한 보건재앙에 세계가 움츠려들고 있는바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불안 심리는 계속 이어질 터,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국민들이 일상생활에서 보건수칙을 잘 지키고 보건당국에 적극 협조한 덕에 외국과 같은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을 보이지 않아서 그 점은 여간 다행이 아니다.

냉정히 생각해볼 때 중국에서 신종 바이러스 발생 초기에 정부가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방역차원에서 잠재적인 중국인 입국 제한 조치 등을 취했더라면 지금보다 국민 피해자가 덜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그렇지 못해 사실상 피해자이기도 한 31번 확진자가 오히려 가해자인 양 덤터기 쓰고 특정 종교가 비난받고 그 종교의 신도들이 도매금으로 취급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었으니 모든 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국가적 환난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코로나19는 신천지예수교회 때문”이라는 사족을 다는 사람들이 많다. 대구에서 31번 확진자가 신앙생활로 참석했던 신천지 대구교회에서 신도들이 집단발병했으니 그런 말이 나올만하다. 때문에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을 신천지예수교회 이만희 총회장에게 물었고, 나이 구순의 이 총회장이 구속돼 100일 넘게 영어(囹圄) 신세를 지다가 지난 12일 병보석 허가를 받았다. 굳이 법률 위반 혐의를 따질 거라면 법의 원칙대로 불구속 재판이 옳았다고 본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은 국민에게 평등하므로 어떤 신분과 지위의 사람이라도 범죄 혐의가 있어 검찰이 기소했다면 재판을 받아야 한다. 그 재판에서 유죄로 인정되면 지위 고하나 신분의 귀천에 관계없이 죗값을 치러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터. 그것이 만인 평등원칙이고 엄중한 법의 잣대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제기되는 형사사건 중 10% 정도가 형사재판으로 진행되고, 설사 검찰 기소로 인해 형사재판으로까지 이어진다고 해도 불구속 재판이 헌법과 법률상 원칙이 아닌가. 그러함에도 고령에다가 지병이 있는 이만희 총회장을 구속시킨 것은 김경수 경남지사 사건과 비교해 봐도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임은 명백한 것이다.

김경수 지사는 2018년 8월경 재판에 넘겨져 1심 유죄선고 후 법정구속됐으나 77일 만에 병보석 허가로 풀려났다. 지난 6일 항고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응당 법정구속돼야 하나 재판부에서는 방어권 차원에서 법정구속을 하지 않았다. 김 지사가 상고심에서 유무죄를 다툴 방어권을 보장해준 것인데 특이한 점은 사실심의 종결인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법정구속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는바, 이와 이 총회장 사건과 비교해보면 느껴지는 게 많다.

이 총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3가지로 방역조사 등 방역을 방해한 혐의와 신천지 연수원인 평화의 궁전 신축과 관련된 횡령 혐의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공공시설에서 종교행사를 연 혐의(업무방해)다. 이 가운데 코로나19 관련 외 나머지 혐의는 검찰이 이미 한 번 불기소한 사건들을 다시 기소한 내용이며, 핵심인 방역방해 혐의는 치열한 감염예방법상 법리다툼의 공방전이 예상된다. 검찰에서는 이 총회장이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지난 2월 신천지 간부들과 공모해 방역당국에 신도 명단과 집회시설 장소 등을 축소 보고했다는 혐의지만 감염예방법상 규정된 역학조사 관련 규정과 자료제출 관련 근거 등에 대해 엄밀히 따져 봐야할 것이다. 감염예방법 제18조(역학조사)에 이어 동법 제18조의4의 자료제출 요구 대상은 중앙행정기관의 장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단체 등이며, 여기에서 기관·단체는 의료기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법 제76조의2는 정보제공만을 규정하고 있는바, 이 총회장 변호인단은 감염예방법상 역학조사 대상 중 이 총회장은 무관하다는 것이며, 적용대상이 아닌 이 건 기소는 형사처벌이 안 됨을 주장하고 있으니 귀추가 주목된다.

법리적 문제와 사실적 내용은 재판에서 밝혀질 테지만 논란 여지가 많은 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피고인의 방어권 차원과 고령을 감안해서라도 불구속 원칙이 법의 정신에 충실했을 것이다. 그와 다르게 특정종교 비방과 여론용 짜 맞추기에 편승해, 또 권력자의 재판과는 다른 양상의 이 총회장 사건은 진정한 법의 정의와 천부인권설을 다시금 생각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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