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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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하는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가 매일 아침 휴대폰을 일괄 수거해 종례 시간에 다시 나눠주는 일이다. 휴대폰을 분신처럼 여기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늦게 내려는 바람에 실랑이를 벌이거나, 심지어 공기계를 갖고 와 반납하고 다른 휴대폰으로 일과시간 내내 게임과 SNS를 하다 적발되는 학생도 있다. 반납하지 않고 사용하다 적발될 경우 1~2주 압수하는 교칙에 따라 압수라도 할 경우에는 온갖 외압이 다 들어온다. 엄격한 부모를 둔 아이의 경우는 조부모를 동원하거나 읍소 전략을 쓰다가 안 되면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이 돼 반항도 서슴지 않는다.

한 학생이 ‘학교에서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일괄수거하는 게 인권침해이며 부당하다’라고 국가인권위에 진정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가 ‘학교 일과시간 동안 학생 휴대전화를 일괄 수거해 종례 후 돌려주는 일부 학교의 생활규정이 인권침해’라고 인정하고 학교의 생활규정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스마트폰이 단순 통신 기구 이상의 의미를 가진 만큼 통신의 자유가 과도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아이들에게 휴대폰이 갖는 의미는 교사나 부모가 생각하는 이상을 초월하는 건 맞다.

하지만 학생 개인의 인권침해는 차치하고 학교는 면학 분위기를 조성해 공부하는 곳이다. 스마트폰을 걷는 건 학교의 기능을 좀 더 강화하려는 측면이지 인권을 침해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학교 내에서 휴대폰을 반납하면 공부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고 쉬는 시간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도 많아진다. 아이들 손에 스마트폰이 쥐어지는 순간 게임을 하거나 웹툰·유튜브를 하느라 친구들과 대화조차 하지 않는다. 수업시간에 스마트폰을 자율로 사용토록 하라는 건 학교의 기능인 면학 분위기를 포기하라는 의미다. 가뜩이나 교권 추락으로 수업을 끌어가기 힘든 실정인데 스마트폰마저 통제를 하지 못하면 교사에게 수업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미성년자인 학생은 자유보다 의무와 책임을 먼저 배워야 올바르게 자유를 누리는 법을 알게 된다. 스스로 자제 능력이 부족한 아이에게 자율적으로 맡기라는 건 현실을 도외시한 말이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이 휴대폰 게임을 하다 언론에 보도된 사례가 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마저 자신을 통제 못 해 중요한 국정감사에서 게임을 하는 게 현실인데 초중고 학생에게 휴대폰을 손에 쥐여 주고 수업에 집중하길 바라는 건 무리다. 결국, 수업시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수업 분위기를 흐리는 학생이라도 생기면 교사는 그 학생과 실랑이를 벌이느라 다른 학생이 누려야 할 학습권은 심각하게 훼손된다.

대다수 학생의 학습권을 파괴하는 가해자의 인권은 보호돼도 정작 피해를 보는 대다수의 학생 인권은 보호받지 못한다. 학교에는 휴대폰 사용 권리만 주장하는 아이만 있는 게 아닌 조용히 수업받을 권리를 주장하는 아이도 많다. 일방적으로 한쪽 아이의 인권만 생각해 규칙을 개정하라고 권고하는 건 다른 아이가 지닌 학습권, 인권과 학교와 교사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행위여서 결코 인권위가 강제할 사안이 아니다.

어찌 됐든 인권위 권고가 내려졌으니 학교는 나름대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학교별, 학급별로 학생 회의나 학급 회의를 통해 휴대폰 사용 규칙을 학생이 정하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정한 규칙은 친구의 시선을 의식해 지키려고 하는 동기가 더 높아 규제가 가능할 수 있다. 의사 결정 과정에서 휴대폰 사용 권리보다 학습권을 더 존중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우세해 올바른 방향으로 규정이 제정되도록 지도하는 방법 외엔 없다. 학생 회의에서마저 휴대폰을 학생이 자율적으로 사용하도록 하자고 결정하면 학교나 교사는 제재할 방법이 없다. 교사가 걷지 않아도 교실마다 개인 사물함이 있으니 수업 시작 전 스스로 사물함에 두고 오는 걸 규칙으로 만들어 학생들 스스로 지킬 수만 있다면 최고의 선택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교사의 인권은 바닥에 떨어졌고 학생의 인권만 중요시되는 게 학교의 현실이다. 학생이 수업시간에 잠을 자거나 딴짓을 해도 교사가 제재할 방법이 없도록 교사의 손발을 다 묶어 놓더니 이젠 수업시간에 휴대폰 마저 자율로 맡기라고 하면 교사는 아예 수업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가정에서 1명의 자녀의 휴대폰도 어쩌지 못하는 데 30여명의 학생의 휴대폰을 걷지 않고 교사가 통제하길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교사의 수업권은 인권위나 그 어떤 권력으로도 침해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권리임을 인권위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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