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노르웨이)=AP/뉴시스】지난 2012년 6월15일 미얀마 야당 지도자(당시) 아웅산 수지 여사
【오슬로(노르웨이)=AP/뉴시스】지난 2012년 6월15일 미얀마 야당 지도자(당시) 아웅산 수지 여사

아웅산 수치의 여당 총선 압승

‘인권’ 공로에 노벨 평화상 수상

이후 로힝야족 대학살 군부 옹호

인권 운동가들 정치 사범 구속

“가장 빨리 퇴색한 인권 영웅”

[천지일보=이솜 기자]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그가 이끄는 여당인 민주주의 민족동맹(NLD)이 지난 총선에서 전체의 83.2%에 달하는 의석(396석)을 얻은 것으로 15일 공식 집계됐다.

NLD의 이번 결과는 50년 이상 지속된 군부 집권을 끝낸 2015년 총선 때의 390석보다 6석을 더 가져온 것이며 수치 고문은 양곤 외곽 코무 지역구에서 3연임에 성공했다.

NLD는 “국민이 수치 고문의 리더십을 여전히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하는 등 미얀마 내에서는 분위기가 고무됐지만 놀라운 결과에도 국제사회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이끌며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에서 큰 신망을 얻었던 수치 고문은 이제는 오히려 비판자들에 대한 구금과 소수민족을 학살을 변호하기 때문이다.

8일 미얀마 총선 후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의 민주주의 민족동맹(NLD) 본부 앞에서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8일 미얀마 총선 후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의 민주주의 민족동맹(NLD) 본부 앞에서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빛 바랜 ‘민주주의 아이콘’

앞서 수치 고문은 군부 집권에 도전하며 세계에 두 가지를 약속했었다. 미얀마의 정치사범들이 자유롭게 풀려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이고, 국경 지대에서 70년간 벌어지는 민족 분쟁을 끝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공약은 달성되지 못했고 ‘민주주의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는 금세 빛을 바랬다. 75세의 수치 고문은 로힝야족 이슬람 소수민족에 대한 살인적인 캠페인을 경시하면서 한때 그를 가뒀던 그 장군들을 옹호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위신이 이렇게 빨리 퇴색한 인권 영웅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수치 고문은 한때 넬슨 만델라, 바츨라프 하벨과 함께 독재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를 대변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국내에서 수치 고문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 NLD는 총선에서 또 한 번 압승을 거뒀고 수치 고문은 앞으로 5년 더 군부와 권력을 나눠 갖게 됐다.

1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도트 테드 킨 전 NLD 의원은 “수치 고문의 리더십 스타일은 민주체제로 가는 게 아니라 독재체제로 가고 있다”며 “그는 대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작년 수치 고문은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대상으로 집단학살이 자행됐다는 주장으로부터 미얀마군을 방어하기 위해 국제사법재판소를 방문했다. 그는 법정에서 “불균형한 힘이 로힝야족에 가해졌다는 것을 배제할 수 없지만, 로힝야족 집단학살이 있다는 주장의 의도는 불완전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NYT에 따르면 수치 고문 정부 기간 소수민족이 모여 있는 미얀마의 국경 지역은 10년 전보다 더 많은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시인, 화가, 학생들은 그들의 생각을 표현한 죄로 수감됐다. 현재 미얀마에서는 584명이 정치범이거나 그러한 혐의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고 정치범 지원 협회는 전했다.

북부의 자치권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카친족 출신의 정치가인 셍 누 판은 “이제는 그녀가 권력을 맛봤으니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미얀마군의 로힝야족 학살을 증언하는 미얀마군 사병 2명의동영상 장면. (출처: 뉴시스)
미얀마군의 로힝야족 학살을 증언하는 미얀마군 사병 2명의 동영상 장면. (출처: 뉴시스)

◆“배타주의가 수치 인기 비결”

수치 고문은 장군의 딸이자 정치적 귀족으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인 독립 영웅 아웅 산은 수치 고문이 2살에 암살됐다. 이후 수치 고문은 해외에서 28년을 보낸 후 1988년 미얀마 전역에서 민주화 시위가 벌어지면서 귀국했다. 몇 달도 안 돼 전업주부였던 수치 고문은 민주화운동의 지도자로 부상했다.

1989년 군사 정권이 그를 가뒀고, 그 후 NLD는 선거에서 승리했다. 2년 후 수치 고문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비폭력 투쟁’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수치 고문의 오랜 지지자였던 빌 리처드슨 전 유엔 대사는 “아이러니하게도 국제사회는 그의 자유를 홍보하기 위해 사용했지만 그는 군부와 완전히 동일한 법률체제를 이용해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로힝야 대학살을 폭로한 후 수감된 로이터 기자 2명을 석방하라고 수치 고문에게 촉구했다가 수치 고문이 너무 화가 나서 자신을 때릴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든 이후 수치 고문과 결별했다고 전했다.

NYT는 수치 고문의 군사 통치와 관련 그의 아버지가 만든 군대에 대한 존경을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NLD의 창립자 중에는 미얀마 배후에서 반군과 싸운 전 군 장교들도 포함됐다.

수치 고문은 2016년 국가자문위원으로 실 정권을 잡은 이후 군부에 대한 칭찬을 거듭하는 한편 로힝야족 멸살 추진 정책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지 않다. 2017년 로힝야족 100만명 중 약 4분의 3이 이웃 방글라데시로 피신했다.

미얀마의 로힝야 무슬림 난민들이 2017년 11월1일 강을 건너 이웃 방글라데시로 도피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미얀마의 로힝야 무슬림 난민들이 2017년 11월1일 강을 건너 이웃 방글라데시로 도피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미얀마에 남아있는 로힝야족 중 많은 수가 수용소에 있다. 로힝야족은 지난 8일 총선에서 투표할 수 없었다. 250만명의 바마르 등 다른 소수민족의 투표권도 박탈됐다. 다만 민족정당들은 두 명의 무슬림 후보를 성공적으로 출마시켰다.

수치 고문의 지지자들은 그가 취약계층을 대표해 목소리 내는 것을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 우월주의가 아니라, 군부를 부정하고 다시 완전한 권력을 장악할 기회를 위한 정치적 실용주의라고 옹호한다.

총선 결과가 보여주듯 미얀마 내 수치 고문의 인기는 대단하다. NYT는 국가 분위기 속에 ‘배타주의’가 있음을 지적했다. 앞서 인종 대학살 혐의를 받고 있는 군부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세우기를 원하는 서방 나라들에 대해 수천명의 승려들은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영향력 있는 승려인 우투 치타는 “서방 사람들은 수치가 방글라데시인(로힝야족은 미얀마 출신이다)을 진압하기 때문에 환영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그가 한 일은 옳았다”고 말했다.

선거 이후 수치 고문은 장군들이 건설한 요새 수도인 네피도의 한 별장에 은신해 있다. 군부가 버린 이전의 수도 양곤에서 새로운 세대의 인권 운동가들은 수치 정부 하에서 체포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교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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