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던 ‘교향곡 9번’의 승리는 베토벤의 마음에 빛나는 자취를 남겼다.

이와 관련해 그가 장래를 위하여 세운 계획이 있었으니 구체적으로 ‘제10번 교향곡’을 비롯하여 ‘바흐의 이름에 의한 서곡’ ‘파르처의 극시 멜류지네을 위한 음악’ ‘쾨르너의 오딧세우스를 위한 음악’ ‘괴테의 파우스트를 위한 음악’ ‘사울과 다윗의 옛 이야기에 의한 종교 음악’ 등이었으나 완성되지는 못하였다.

한편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이 연주된 이후인 1826년 9월 그는 조카인 카를과 함께 동생 요한이 살고 있는 그나이젠도르프에 여행을 떠났다.

베토벤은 그 곳에서 현악4중주곡을 작곡하였으며, 그해 겨울 다시 빈으로 돌아왔는데 돌아오는 여행길에 몸이 좋지 않은 베토벤은 결국 눕고 말았다.

그래서 치료를 받아 기운을 차리는 듯하더니 다시 자리에 눕고 말았으니 그만큼 그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뱃속에 물이 고이기 시작하였으며, 그 뒤로 몸이 자주 부었는데 베토벤은 뱃속의 물을 빼는 수술을 받았는데, 사실 몇 년 전부터 제자 안톤 신틀러가 그를 간호하고 있었다.

또한 그의 친구 슈테판도 날마다 베토벤을 찾아와 위로하며 말벗이 되어 주었는데 특히 베토벤이 가장 반가워한 사람은 슈테판의 아들인 게르하르트였다.

한편 카를이 입대하기 전에 베토벤은 재산을 그에게 물려주겠다는 유언장을 써두었는데 다시 한동안 가라앉았던 몸이 다시 붓기 시작하였으며, 그는 두 달 동안에 네 차례의 수술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1827년 어느 날, 신틀러가 악보 한 뭉치를 가져왔는데 베토벤이 “누구 것이냐?”고 물어 보니 프란츠 슈베르트의 악보라고 답변하면서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처음이자 마지막 인연이 시작되었던 것인데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베토벤은 악보를 받아 들었는데 그것은 ‘겨울 나그네’ 제하의 제목이 붙은 악보였는데, 첫 장을 읽던 그는 “슈베르트! 몇 년 째 같은 곳에 살면서도 만나지를 못했다니… 얼마나 풍부하고 위대한 음악인가. 순수하고 진실해 보이는 그를 만나야겠어.”

이와 같이 베토벤은 신틀러에게 슈베르트를 만나고 싶은 의사를 전달하였으며 베토벤의 뜻을 알게 된 슈베르트는 그의 집을 방문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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