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미국 백악관 잔디밭 로즈 가든에서 열리는 챔피언 초대 행사는 미국 대통령이 국민에게 화합과 단결의 의미를 보여줄 중요한 홍보 행사의 하나였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대다수 미국민을 상대로 정치, 경제, 문화적 차이를 딛고 대통령이 국민과 스포츠로 함께 만나 통합의 이미지를 과시할 수 있는 자리였다.

하지만 지난 4년간 트럼프 시대에 초대 행사의 모습은 많이 달랐다. 진영논리로 미국민들 사이에 심각한 균열이 생기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스포츠 스타나 팀들은 초대를 거부하며 행사 자체가 ‘정치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 동안 단 한 명의 NBA 우승자도 백악관을 방문하지 않았다. 2017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우승한 뒤 백악관 방문을 논의하던 중 간판 스타 스테픈 커리는 불참의사를 밝혔다. 커리의 불참 계획을 들은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백악관 가는 것은 우승팀에게는 큰 영광이다. 커리가 망설이고 있다. 초청이 취소됐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수들의 개인 감정까지 건드린 꼴이었다. LA 레이커스 르브론 제임스는 이를 보고 대통령을 ‘놈팽이(Bum)’이라고 놀리며 “백악관 가는 것은 당신이 나타나기 전까지 큰 영광이었다”고 쏘아붙였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여자 프로농구(WNBA) 챔피언도 백악관에 가지 않았으며, 대학농구 챔피언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여자대학농구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 2018년 슈퍼볼 챔피언 필라델피아 이글스도 이들 대열에 동참했다. 이들 팀들은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입장을 백악관을 방문하지 않는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노선과 인종 이슈에 동조하는 다른 스포츠 챔피언팀들의 백악관 방문은 물론 있었다. 대부분 백인이고 보수적인 성향의 스포츠 종목이나 챔피언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앨라배마와 클렘슨 축구팀, 야구와 하키 등 일부 챔피언팀들이다.백악관 스포츠의 역사는 오래됐다. 1865년 앤드루 존슨 대통령 시절, 야구팀 워싱턴 내셔널스와 브루클린 아틀란틱스가 백악관을 처음 방문했다. 역대 많은 미국 대통령들은 스포츠에 관심을 보이며 메이저리그 개막전에 시구를 하는 전통도 있었다.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챔피언을 초대하는 행사는 1981년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부터 정례 행사가 됐다. 영화배우 출신의 레이건 대통령은 70대 고령에도 불구하고 손자뻘 되는 선수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대학농구 챔피언 조지타운대 선수들과 농구공을 함께 잡고 웃었으며, 슈퍼볼 우승팀 워싱턴 레드스킨스 와이드 리시버에게 패스를 직접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정치적 분열이 점점 커지면서 백악관 방문 행사에 변화가 생겼다. 1990년대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프로골퍼 톰 레이먼은 백악관 초대를 거절했다. 레이먼은 클린턴 대통령을 ‘병역기피한 아기 살인마’라고 불렀다. 2012년 오바마 행정부 때는 낙태 권리의 반대자였던 미식축구 볼티모어 래븐스의 공격 라인맨 매트 버크이 슈퍼볼 우승팀의 백악관 로즈 가든 행사 참가를 거절했다. 보수 성향의 티 파티의 열렬한 지지자인 아이스하키 보스턴 브루인스의 골키퍼 팀 토마스는 스탠리 컵 우승팀으로 로즈 가든 방문에 동행하기를 거절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게 패하면서 내년부터 백악관 초대행사가 어떻게 바뀔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번 미국 대선에서 드러났듯이 양극화된 진영 논리에 변화가 없는 한 정치화된 성격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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