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기병소멸(騎兵消滅)
[고전 속 정치이야기] 기병소멸(騎兵消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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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1941년 6월 22일 새벽 3시, 독일이 갑자기 소련을 침공했다. 독일 중앙집단군 소속 구데리안의 제2기갑군과 호스의 제3갑군은 24일만에 모스크바 가까이 접근했다. 국경 전투는 사실상 종결됐다. 소련의 심장인 모스크바를 점령하면 볼가강 서쪽의 조직적 저항이 무너질 것이다. 히틀러는 키예프 점령이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보급선을 확보하고, 곡창이자 광공업이 발달된 우크라이나를 손에 넣으면 소련군의 카프카즈 유전을 차단할 수 있고, 크리미아로 출격해 소련군의 항공기지를 제거할 수 있었다. 히틀러는 구데리안의 제2기갑군과 바이흐스의 제2군을 남쪽으로 빼돌려서 소련군 주력을 키예프에서 포위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기병대 출신 부디오니 원수가 지휘하는 소련 서남방면군이 스탈린으로부터 키예프 사수명령을 받았다. 구데리안이 전쟁사에 영원한 명성을 남긴 전투의 서막이 올랐다. 키예프 포위전은 전쟁사상 최대 규모의 포위전이었다. 결과는 소련군 제5, 21, 26, 37, 38집단군이 전멸하고, 66만 5000명이 포로가 됐다.

키예프 포위전은 칸나이전투와 절묘하게 닮았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바로의 로마군단과 칸나이에서 부딪쳤다. 한니발의 초승달형 진형이 4만명으로 로마군단 8만명을 섬멸했다. 한니발의 동생 하스드루발이 기병대로 로마군단의 배후를 타격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2천년 후, 구데리안은 내연기관에 강철을 입힌 기갑부대로 우크라이나 초원에서 칸나이포위전을 재연했다. 군사적 시각을 넘어서면, 구데리안은 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만들었다. 오랫동안 유목민족은 최강의 공격력인 기병으로 유라시아평원을 누볐다. 아틸라, 바투 등은 초원, 말, 인력이 응축된 타격력으로 유럽을 유린했다. 탱크집단은 근현대 공업문명이 제공한 군사적 타격역량이다. 현대화된 공업과 광업, 고도의 신기술, 고등교육을 받은 기술인력, 전문화된 군인이 뒷받침했다. 기병과 탱크의 대결은 가축과 내연기관의 힘겨루기를 넘은 유목문명과 공업문명의 힘겨루기였다.

키예프에서 구데리안과 부디오니의 만남은 역사적 의미가 있다. 부디오니는 기병전투를 신봉한 사령관으로 자국의 내전에서 홍군 제1기병군단을 이끌고 불패의 전적을 쌓았다. 그의 기병군단은 3가지 충격력을 갖췄다. 첫째는 중앙아시아에서 기른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말이었다. 한무제가 국방능력 강화를 위해 이광리(李廣利)를 파견해 ‘한혈마(汗血馬)’를 얻으려고 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둘째는 돈강 유역의 용감한 코사크 기병대였다. 셋째는 현대식 열병기인 총과 대포였다. 부디오니 기병군단의 특징은 말을 이용한 기동성으로 화력을 신속하게 공격방향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그는 고전적 기병술과 현대식 화력을 결합해 무결점의 완성미를 이루었다. 공업혁명과 현대과학이 없었다면, 부디오니는 20세기 최고의 명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출현은 기병의 황혼을 재촉하고 말았다.

소련군 내부에도 현대전쟁의 특징을 이해하는 장군이 있었다. 천재적 홍군 장교 투하체프스키는 기계화 전쟁을 중시해 탱크병, 항공병, 낙하산병의 입체작전 연습을 시행했다. 소련 공산당의 내부투쟁이 군대로 파급되자, 부디오니는 기병이 무산계급혁명군의 상징이라고 떠들었다. 트로츠키와 가까운 투하체프스키가 자본가 계급의 대리인으로 지목되자, 현대화 건군사상도 배척됐다. 히틀러는 투하체프스키를 가장 위험한 잠재적 적수임을 간파했다. 그의 반간계에 넘어간 스탈린이 이 천재적인 장군을 제거했다. 전장에서 부디오니는 백병전을 좋아했다. 고대 기병전투의 장관을 꿈꾸는 부디오니는 결사적인 격전을 펼치고 싶었다. 정신뿐만 아니라 행동까지도 부디오니는 중세의 기사와 비슷했다. 탱크로 멋진 적수와 한바탕 기량을 겨루려던 구데리안은 우크라이나 초원에서 말을 탄 중세의 영혼과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독일의 장갑집단이 드니에페르 강가의 평원에서 수많은 말의 유해를 밟고 지나갈 때, 지난날 전쟁사에서 찬란했던 기병은 기록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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