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문재인 정부 집권 4년차의 정치현실은 생각보다 엄중해 보인다. 4년 전 ‘피플파워’로 정권교체를 이뤄냈지만, 그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생각해 보면 딱히 손에 잡히는 것이 많지 않다. 반대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과 비판은 가는 곳마다 넘쳐나고 있다. 단순히 여론조사로만 볼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바닥 민심은 비난을 넘어 거의 냉소적이다. 게다가 부동산 문제까지 언급되면 민심은 말 그대로 폭발 직전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레임덕은커녕 오히려 자신감이 돋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정운영 지지율도 최근 다소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견고해 보인다. 역대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무능한 제1야당인 국민의힘 책임이 제일 크다. 문재인 정부가 각종 개혁 작업을 추진할 때 번번이 발목을 잡았던 쪽이 국민의힘이었다. 그 결과 지난 21대 총선에서는 거의 궤멸 수준의 국민의 심판을 받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의힘이 이후 크게 달라진 것도 없다. 여전히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며 비난에 골몰하고 있다. 반대와 비난 외에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을 정도다.

특히 이번 공수처장 추천위원을 선정하는 과정, 또 공수처장 후보를 추천하는 모습을 보면 역시 실망이다. 판을 깨려는 심사가 아니라면 자격 미달의 인사들을 국민 앞에 내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특정 인사는 아예 판을 깨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이 아직도 이러한 저급한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국민의 신뢰를 받기 어렵다. 21대 총선의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김종인의 비대위 체제를 택한 국민의힘이다. 그러나 재기를 위한 각오는 잠시뿐, 그들의 행태는 여전히 과거 황교안의 미래통합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극은 그렇게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4월 서울시장 선거를 비롯해 규모가 큰 재보선이 예정돼 있다. 이대로라면 부산시장 선거는 몰라도 서울에서는 국민의힘이 고전할 수밖에 없다. 물론 마땅한 인물도 찾기 어렵다. 김종인 위원장이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할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당내 변화와 혁신의 동력을 촉발시켜내고, 당 안팎의 유능한 신진 인사들이 국민의힘을 한 단계 더 진화한 정당으로 탈바꿈시켜내야 한다. 대안은 거기서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변화된 모습을 국민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거의 미래통합당이 아니라 새로운 국민의힘으로 진화한 생생한 모습을 확인토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어렵다면 굳이 김종인 비대위를 계속 고집할 이유가 없다.

김종인 위원장이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고, 또 국민의힘도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이런 시점에서 판을 흔들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는 시도가 서서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이른바 ‘야권재편론’이 그것이다. 안 대표는 최근 며칠 사이 야권을 혁신적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발언을 계속해서 내놓고 있다. 김종인 위원장이 ‘관심 없다’고 말해도 그치질 않고 있다. 겉으로는 혁신, 재편, 플랫폼 등을 말하지만 핵심은 국민의힘을 포함해서 ‘야권 신당’을 창당하자는 뜻이다.

향후 야권 신당의 효과와 누가 그 중심에 적합한지는 논외로 하겠다. 그리고 또 창당이냐고 따지고 싶은 생각도 없다. 아직은 신당의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시점에서 반드시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안철수 대표가 던진 ‘야권재편’이 함의하고 있는 뜻이 간단치 않다는 점이다. 먼저 야권재편으로 판을 바꿔 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구태의연하다. 이미 닳고 닳은 구시대 정치의 단골 레퍼토리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발상을 안 대표가 다시 끄집어낸다는 것 자체가 생경하다. 그리고 마침 선거정국을 앞둔 시점에서, 정치공학적 이합집산이 국민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명확하다. 승리를 위해 일단 판을 바꿔보자는 구호는 구시대 유물이다. 적어도 안철수 대표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안 대표가 이런 셈법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부터 놀라운 일이다. 그것도 혁신이니 플랫폼이니 하면서 ‘쇼잉’을 하는 모습은 참으로 낯설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야권재편은 어떤 방식이든 야권이 ‘반문연대’를 하자는 뜻이다. 그러나 ‘안철수 정치’의 핵심은 진영논리를 거부하고 다양성의 정치를 확립하는 데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다양성을 포기하고 국민의힘과 야권재편을 하자는 것이라면 굳이 국민의당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속셈은 야권재편에 있으면서도 말로는 진영논리 거부, 제3지대 정치를 말한다면 그것은 안 대표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잠시 욕을 먹더라도 이전의 것은 잊어버리고 국민의힘에 들어가는 것이 차라리 담백하다는 뜻이다.

혹여 안철수 대표의 뜻대로 야권재편이 성사되더라도 그 후폭풍을 감내하기 어려울 것이다. 비대위까지 만든 국민의힘은 스스로 혁신의 길을 포기한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기껏 3석을 가진 정당과 신당 창당하려고 비대위까지 꾸렸냐는 비판은 엄중할 수밖에 없다. 국민은 감동은커녕 돌을 던질 것이다. 그리고 안철수 대표는 그나마 조금 남아있는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스스로 짓밟는 일이다. 안 대표를 바라보는 주변의 상처 입은 사람들에겐 ‘배신자’로 기억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럴 바에는 잠시 비난을 받더라도 차라리 국민의힘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는 얘기다.

“정치입문 9년 만에 5번 창당? 혁신, 혁신하는 소리 많이 들었지만 도대체 뭘 하자는 것인지 아직도 국민은 이해를 못합니다. 그냥 반문연대해서 주인이 되겠다는 생각만 하시는데, 이제 그만하시죠.” 지상욱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원장의 따끔한 지적이 더 날카롭게 들린다. 지상욱 원장의 지적대로 ‘야권재편’ 운운하는 소리는 이제 구태를 넘어 무능에 가까운 궤변으로 들린다. 그러니 이제 제발 좀 그만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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