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홍콩 입법회에서 범민주 의원들의 빈자리가 눈에 띈다. 전날 홍콩 정부가 야권 의원 4명을 해임하자 범민주파 의원 15명이 이들과 연대해 전원 사퇴했다. (출처: 뉴시스)
12일 홍콩 입법회에서 범민주 의원들의 빈자리가 눈에 띈다. 전날 홍콩 정부가 야권 의원 4명을 해임하자 범민주파 의원 15명이 이들과 연대해 전원 사퇴했다. (출처: 뉴시스)

범민주 의원 19명 전원 물러나

“일국양제 공식 사망선고” 비판

미 제재 경고… 영·독 등 규탄

“시진핑 아래 개혁 희망 사라져”

[천지일보=이솜 기자]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 4개월 만에 홍콩에서 야권이 사라지게 됐다.

홍콩의 의회인 입법회 70명 의원 중 야권 범민주파 의원 19명 전원이 물러나면서다. 이들은 중국의 마지막 남은 반중파 의원들로, “이제 홍콩에서 의미 있는 반대는 끝났다”는 평마저 나온다.

이들의 사퇴는 홍콩 정부가 야당 의원 4명을 해임한 결정에서부터 시작됐다.

중국 최고 입법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지난 11일 ‘애국심’을 골자로 하는 홍콩 입법회 의원의 자격요건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이를 어길 경우 의원 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입법회는 과거 영국이 홍콩을 반환할 때 민주적 자유를 보존하기 위해 고안된 ‘하나의 국가 두 체제(일국양제)’의 법적 틀의 상징이 돼 왔는데, 홍콩 정부에 사법 절차 없이 의원직을 박탈할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의원 자격 박탈 요건에는 홍콩 문제에 있어서 외국 세력의 도움을 구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행동, 독립 조장 등의 행위가 포함됐다.

홍콩 정부는 결의한 채택 직후 효력을 발휘해 4명의 현직 의원의 자격을 박탈시켰다. 이에 15명의 범민주 의원들이 이들과 연대한다며 전원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이다.

홍콩 제1 야당인 민주당의 우치와이 주석은 전날 밤 사퇴 기자회견에서 “‘일국양제’가 아직 남아 있다고 세상에 더 이상 말 할 수 없다. 공식 사망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BBC는 이를 두고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처음으로 홍콩에서 반대 목소리가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케네스 챈 홍콩침회대 정치학 교수도 “의미 있는 반대는 이것으로 끝”이라며 “우리가 예상했던 방향이며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지적했다. CNN은 “시진핑 국가주석 아래 더 이상의 개혁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평했다.

실제 홍콩 주민들이 정치적 반대를 표명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 사라지면서 홍콩 내 민주화 세력은 힘을 잃는 양상이다. 작년 초부터 홍콩 내 민주화 운동은 많은 변곡점을 겪은 가운데 핵심 사건들은 다음과 같이 전개됐다.

2019년 3월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에 대한 항의는 6월 홍콩 전역에서 200만명이 반대 시위에 참여하는 등 급속하게 퍼져갔다. 7월 시위대는 홍콩의 베이징 연락사무소를 파괴했으며 검은옷을 입은 시위대와 친중파-홍콩 경찰의 대립은 본격 시작됐다. 이후 몇 달 동안 이들의 거리 충돌이 일상화되고, 홍콩 당국은 시위대와 민주 운동가들을 무차별적으로 체포했다.

체포가 심화된 가운데서도 시위는 큰 성공을 거두는 듯했다. 2019년 9월 캐리 람 행정장관이 송환법안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위대는 송환법 철회를 비롯해 민주화를 위한 다섯 가지 요구를 촉구하며 대학 캠퍼스를 중심으로 시위를 더욱 격렬하게 이어갔다.

11월 말에는 민주화 운동가 후보들이 지방 선거의 의석 대부분을 차지하는 성과를 얻었다.

선거 이후 몇 주 동안 시위는 잠잠해졌으나 올해 새해 첫 날부터 시위대는 다시 거리로 나와 기존의 요구를 다시 외쳤다.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은 시위대의 발을 묶었다. 또한 홍콩 정부는 대유행으로 인해 9월로 예정됐던 입법 선거를 1년 연기했다. 동시에 학생 시위 지도자였던 조슈아 웡을 포함한 10명의 야당 후보들의 출마도 금지됐다.

홍콩 입법회 범민주진영 의원들이 11일 저녁 기자회견을 열고 의원직 동반 사퇴를 결의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홍콩 입법회 범민주진영 의원들이 11일 저녁 기자회견을 열고 의원직 동반 사퇴를 결의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홍콩 최대의 시위가 벌어진 지 1년 동안 중국 중앙정부는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 올해 6월 말 중앙정부는 중국에 대한 반대와 항의를 표적으로 모호하고 광범위한 보안법을 제정했다.

중국 정부가 홍콩에 보안법을 시행한 이후 몇 달 동안 홍콩의 정치 지형은 대폭 재편되며 홍콩 당국이 대규모 시위를 진압할 수 있게 됐다.

운동가들은 해외로 도피하거나 잠적해 버렸고 정당들은 자기 검열 속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보안법에 따라 민주화 인사 20명 이상이 체포됐다.

야당 의원들은 보안법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하거나 회의 중 시위를 벌였지만 어떤 결과도 얻지 못한 채 하나의 연극으로 끝이 났다.

보안법은 홍콩 정부가 취하고 싶어 하는 어떤 조치에도 알맞은 구실이 되고 있다.

특히 이번 결의안은 홍콩 시위대의 지지자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대선 패배에 대처함에 따라 미국의 주의가 산만해진 데서 비롯됐을 가능성도 있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서방국가는 홍콩 야당 의원들의 의원직 박탈을 즉각 규탄하며 추가 제재를 예고했다.

클라우디아 모 민주당 의원은 이번 사태를 두고 CNN에 “홍콩 민주화 투쟁에 정점을 찍은 것”이라며 “마틴 리는 23년 전 연설에서 ‘홍콩은 동양의 진주’라고 언급했다. 진주에게 광택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자유다. 마음껏 행사하고 법치가 보장하는 자유를 빼앗긴다면 진주는 그 빛을 잃게 될 것이고 중국과 세계에 대한 가치마저 잃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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