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문산성당 전경. 왼쪽의 기와지붕으로 된 강당 건물과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서양식 교회당이 이색적인 조화를 이룬다. (제공: 진주시) ⓒ천지일보 2020.11.9
경남 진주문산성당 전경. 왼쪽의 기와지붕으로 된 강당 건물과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서양식 교회당이 이색적인 조화를 이룬다. (제공: 진주시) ⓒ천지일보 2020.11.9

조선 찰방에서 시작된 역사

유명드라마 촬영지로 ‘눈길’

신축해도 외형 그대로 보존

성당 인근 맛있는 먹거리에

일제강점기 이겨낸 사연도

[천지일보 진주=최혜인 기자] 경남 진주에는 바쁜 일상을 잠시 뒤로하고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문산성당’이라는 숨은 명소가 있다. 올해로 115주년이라는 긴 시간을 품은 ‘진주 최초의 한옥성당’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고즈넉한 미를 뽐낸다. 한 세기를 지나오며 전통 한옥과 서양 고딕이라는 건축양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문산성당을 본지에서 찾아봤다.

문산성당은 신도시로 개발된 진주 경남혁신도시 인근 문산읍 소문리 58-1 일대에 자리 잡고 있다. 성당은 전통과 현대 건축양식의 조화를 이룬 건축물로 높이 평가받아 지난 2002년 경남도 등록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됐다. 종교시설이면서도 최근에는 드라마 촬영지로 많은 관심을 모아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1923년 11월 신축된 기와집 성당 모습. 푸른 잔디밭과 소나무가 한옥성당과 조화를 이룬다. (제공: 진주시) ⓒ천지일보 2020.11.9
1923년 11월 신축된 기와집 성당 모습. 푸른 잔디밭과 소나무가 한옥성당과 조화를 이룬다. (제공: 진주시) ⓒ천지일보 2020.11.9

◆조선의 찰방(察訪)에서 성당으로

문산성당은 과거 1905년 소촌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돼 광복하기 전까지 진주를 포함한 서부 경남지역 천주교의 거점이었다. 당시 이 일대는 조선 시대 찰방(察訪) 관아를 중심으로 그 앞에 역리들의 관사와 그 가족들이 살았던 집 등으로 역촌이 형성돼 교통의 요지를 이룬 곳이다.

현재 신부의 사무실로 사용하는 건물이 바로 옛 찰방의 관아였다. 찰방은 조선 시대의 각 역참(驛站)과 관·원 등에서 역로와 역마, 통행 등을 관리하는 종6품 관원을 말한다. 소촌찰방은 진주를 비롯해 거제, 진해, 고성, 사천, 남해, 하동 등 주변 15개 역을 관리했다.

관사는 1885년 찰방 제도가 폐지된 이후 외국인 선교사가 이곳을 포교당으로 활용하면서 성당으로 변모했다. 당시 프랑스 권 마리오 줄리엥 신부가 1907년 찰방관사와 역리관사 10여채와 대지 2400여평을 매입해 성당 본당과 사제관으로 고쳐 썼다. 이후 1937년 현재 고딕 양식 성당 건물이 완공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1923년 11월 신축된 기와집 성당 모습. 현재는 강당으로 쓰이지만 건축 당시 외형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제공: 진주시) ⓒ천지일보 2020.11.9
1923년 11월 신축된 기와집 성당 모습. 현재는 강당으로 쓰이지만 건축 당시 외형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제공: 진주시) ⓒ천지일보 2020.11.9

◆전통 한옥성당의 탄생

과거 역촌이었던 마을 골목길을 지나 성당 입구에 들어서면 볕을 잔뜩 머금은 잔디밭이 평온함을 안겨준다. 그 뒤로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서양식 교회당과 기와지붕으로 된 강당 건물이 조화를 이룬다. 어느 것 하나 넘치거나 두드러진 것 없이 소박한 모습이다.

이 두 건물은 지방에서 활동한 외국인 선교사들의 활동 상황을 알 수 있는 상징적인 건물로 꼽힌다.

입구에서부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기와 건물이 바로 국내에 몇 안 되는 한옥성당 건물이다. 이곳은 현재 강당으로 쓰이고 있다. 19세기 초반 찰방 관사를 고쳐 쓰던 성당은 400여년 된 낡은 건물로 더 이상의 보수가 어려워져 1923년 11월 기와집 성당을 신축했다.

특히 기와에는 강희(康熙) 24년(1685년, 숙종 11년)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어 성당 건축에 조선 중기 건물의 기와를 재활용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한옥성당은 정면 6간, 우측면 4간, 좌측면 3간 규모로 동쪽에 출입구, 서쪽에 제단을 두고, 내부 예배 공간에 열주를 둬 신랑(身廊)과 측랑(側廊)을 구별했다. 서양식 성당을 신축하면서 현재는 강당으로 쓰이지만 건축 당시 외형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왼쪽의 기와지붕으로 된 강당 건물과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서양식 교회당이 이색적인 조화를 이룬다. (제공: 진주시) ⓒ천지일보 2020.11.9
왼쪽의 기와지붕으로 된 강당 건물과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서양식 교회당이 이색적인 조화를 이룬다. (제공: 진주시) ⓒ천지일보 2020.11.9

◆문산성당 주변의 먹거리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한적한 문산성당을 둘러보려면 맛있는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천년의 역사가 흐르는 강의 도시 진주에는 칠보화반(七寶花盤) 또는 꽃밥이라 일컬어지는 ‘진주비빔밥’이 있다. 천년의 맛과 향기를 간직한 진주비빔밥은 한 끼에 필요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웰빙식이다. 양념한 육회·숙주나물이 들어간 비빔밥과 함께 나오는 따뜻한 선짓국은 쌀쌀한 몸을 녹여준다. 조선시대에는 그 맛과 영양성이 뛰어나 궁중에서 즐겨먹는 음식 중 하나였고 특히 태종 때 한양의 정승들이 비빔밥을 먹기 위해 천리길 진주를 자주 왔었다는 기록도 있다.

또 진주에는 ‘거짓으로 제사지내고 먹는 밥’이라는 의미의 헛제삿밥도 빠질 수 없다. 고사리·도라지를 비롯한 7가지 나물과 조기 등의 생선, 육전·떡·정과 등 전통제례에서 쓰는 음식을 기본으로 한다. 간장·깨소금·참기름 외에 다른 조미료를 넣지 않고, 비빔밥에 고추장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조미료가 적게 들어가 담백하면서도 제사음식 특유의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어 건강에 좋은 ‘웰빙 음식’으로 손색없다.

이밖에도 ‘냉면 하면 진주냉면과 평양냉면’이라고 할 만큼 진주의 맛을 대표하는 냉면도 좋다. 메밀면, 육수, 그리고 무엇보다 고명으로 올라가는 한우 육전이 특징이다.

왼쪽의 기와지붕으로 된 강당 건물과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서양식 교회당이 이색적인 조화를 이룬다. (제공: 진주시) ⓒ천지일보 2020.11.9
왼쪽의 기와지붕으로 된 강당 건물과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서양식 교회당이 이색적인 조화를 이룬다. (제공: 진주시) ⓒ천지일보 2020.11.9

◆고딕 양식의 현재 성당

문산성당은 열대 나무들이 곳곳에 심겨 있어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긴다. 무엇보다 한적한 분위기 속에 19세기 고딕 양식의 성당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외국에 와있는 느낌도 들게 한다.

서양식 성당은 1935년 8월 신축공사를 통해 1937년 5월 사제관·수녀원과 함께 완공됐다. 이후 기존의 한옥성당은 유치원 강당으로 쓰였다. 신축된 성당은 당시에는 보기 드물게 기둥과 벽체를 철근 콘크리트로 시공한 긴 장방형 평면의 서양식 건물로 세워졌다. 정면의 뾰족한 종탑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의 구조를 갖췄다.

특히 십자가 아래 종탑에는 프랑스에서 제작해온 종 2개를 설치했는데 여기에는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이겨낸 하나의 사연도 얽혀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사찰과 교회에 동종 등 모든 금속을 헌납하도록 강요하면서 문산성당 종탑에 달린 본당 종도 빼앗길 위기에 처하게 됐다. 이에 당시 주임 신부는 본당의 종을 떼어내 성모동굴 뒤 언덕에 묻고 함구령을 내렸다고 한다. 대신 갈촌공소에 있던 무쇠 종을 헌납했다. 덕분에 본당의 종을 지킬 수 있었고, 1945년 8월 15일 광복절 해방의 기쁜 소식과 함께 땅속 깊이 잠들어 있던 종은 제자리로 다시 돌아가게 됐다.

또 당시 서양식의 아름다운 건물이었던 신축 성당은 한국전쟁 때 인민군 내무서로 사용되다 철수하는 북한군이 마구 쏘아댄 총탄으로 벽과 지붕 등이 파괴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이렇듯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아픈 역사를 지켜본 문산성당에는 아직도 옛 사진이 남아 당시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

한적하고 아늑한 매력의 문산성당. 분주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하나의 쉼표가 될 이곳으로 한 번쯤 떠나보길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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