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 전경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 2020.11.9
고택 전경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 2020.11.9

가난한 백성 위해 의술 펼쳐
당시의 삶 이해하는 장소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조선시대 가난한 백성을 위해 의술을 펼친 명의(名醫) 박한진(朴翰鎭, 1815~1893) 생가가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9일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에 있는 ‘봉화 오고당 고택’을 국가민속문화재 제298호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봉화 오고당 고택은 조선후기 명의로 알려진 박한진이 살았던 곳으로 1820년 건립됐다고 전하며, 오고당(五高堂)이란 당호는 박한진의 호를 따서 후손들이 붙인 명칭이다.

오고선생 유고집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박한진이 61세 때인 1875(고종 12)년 헌종의 생모인 조대비 신정왕후(1808~1890)의 병환을 고친 후 임금이 그의 의술을 높이 평가하여 명가전만리(名可傳萬里:명성이 만리에 전해질 것이다)라 하여 만리(萬里)라는 호를 내렸다. 또 벼슬을 내려 고마움을 표하려 했으나 그는 이를 거듭 사양했다고 한다. 이에 감탄한 고종은 의리와 인품을 갖추고 있다며 오고(五高)라는 우호를 하사해 명의로 명성을 널리 알리게 됐다고 한다.

그 후 조대비도 여러 차례 친필편지를 보내 가까이 있어달라고 했지만 박한진은 이를 사양하고 79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향리에서 가난한 백성을 위해 의술을 펼쳤다. 조대비의 한글친서는 현재 전하지 않지만, 벽지에 거주하며 명성이 궁중에까지 알려져 왕실의 대비를 치료하고 향리에서 평생을 가난한 백성을 위해 의술을 펼친 박한진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대단히 흥미로우며, 그의 생가인 본 고택은 명의의 삶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민속건축자료라 할 수 있다.

한편 고택이 자리한 경상북도 봉화군 지역은 강원 산간지방과 맞닿아 경계를 이루고 있지만 예전에는 하나의 문화권(文化圈)으로 상호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 왔다. 이러한 양상은 가옥의 평면을 주변의 지형과 자연환경에 따라 외폐내개(外閉內開)의 형태로 구성하게 됐다. 즉, 각 공간을 기능에 따라 본채 이외에 창고와 외양간 등의 부속채를 분동(分棟) 형식으로 별도로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1동의 본채 내에 집약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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