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화

 

보도블록 틈에서

늦가을 이름 없는 꽃 한 송이 피어있다.

보도블록과 보도블록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꽃,

틈이 피어 올렸다.

 

나와 당신의 사이

그 틈에서 그리움이 피어오른다.

 

[시평]

우리는 늘 모든 일을 빨리 하려고만 한다. 그래서 기차를 타도 급행열차를 타야 하고, 길을 가도 지름길을 찾아다니고, 무슨 일을 해도 빨리빨리 그 일을 해치운다. 그래서 이내 다음 일을 할 태세를 갖추고, 다음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이러함이 어연 우리 삶의 일상이 됐다.

이와 같은 숨 가쁜 현대생활 속에서, 천천히, 즉 슬로우 운동이 전개되기도 한다. 슬로우 시티, 또는 슬로우 후드 등, 우리 삶에서 바쁘기만 한 세상사를 한 템포 늦추면서, ‘느리게 살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주변에서 늘어나고 있다. 산업화·도시화·정보화 등으로 우리의 삶은 나날이 바빠만 진다. 그러나 바쁜 것이 결코 행복을 주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안다.

어쩌다 급행열차를 놓쳤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완행열차를 탔다. 빨리 가야 하는데. 그러나 완행열차를 타니 조그만 간이역에도 기차는 정차를 하고, 그 간이역에서는 늙은 역무원이 나와서 정겨운 깃발을 흔들며 열차를 맞이하고 또 보내는 모습. 그 주변으로는 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 바쁜 삶 속에서 그만 놓쳐버리기 십상인, 애틋이 숨어있는 쓸쓸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 완행열차를 탄 일이 오히려 잘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이 빠르게, 그래서 성장 일변도로만 달려야 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을 지배하는 속도 지상주의, 우리에겐 더 이상 미덕이 될 수는 없다. 이 가을 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 급히 서두르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던, 그 숨어 있는 듯한 세상의 아름다움. 우리 모두 발견할 수 있는, 진정 완행열차를 타는 그런 가을이 되면 참으로 좋겠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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