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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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의 석양빛은 트럼프 어깨 위에 내려앉는 것 같다. 미국 국민들은 차기 대통령으로 바이든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소식을 누구보다 가슴 졸이며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한반도 북쪽에 있다. 바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다. 비핵화라는 외교적 밧줄을 붙잡고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세 번이나 만나며 국제사회에 진입하는 듯했지만 트럼프 시대의 종막과 함께 김정은 시대도 저무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기대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물론 북한은 그렇게 간단한 체제가 아니다. 지정학적으로, 지경학적으로 75년의 장구한 기간 지속해 오는데 능숙한 통치술을 발휘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미국과 유엔의 제재는 서서히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몇 가지를 예상해 북미관계를 진단해 보자. 첫 번째 시나리오는 외교적 관점으로, 바이든 후보가 미 상원 외교위원장, 부통령 등을 역임해 외교에 안목이 높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 분석이다. 한마디로 점진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점이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대북정책의 핵심이 ‘전략적 인내’였다는 점에 착상해 트럼프식 빅딜이라는 다급한 방식보다 다소 느슨하고 완만한 북미관계 시대가 열릴 것이란 전망이다.

그런데 이 시나리오는 우리 입장에서는 좀 걱정되는 점이 있다. 바로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는 점으로 바이든 행정부가 완전히 틀을 갖추는 데 걸리는 시간만도 최소한 6개월이고 그 정부에서 새로운 접근법을 확정해 추진하기까지는 1년 정도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또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2022년 5월이고 대통령 선거는 그보다 두 달 전쯤 치러질 전망이다. 한미가 새로운 대북정책을 추진하기까지 남아 있는 시간이 지금부터 계산해도 1년 남짓 남아있다. 그런데 바이든 정부가 새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시기가 내년 하반기라면 한미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몇 달 안 된다는 계산이 나오게 되는데 이 점이 김정은 위원장에겐 불쾌함을 넘어 불안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종전선언, 주한미군 주둔비용, 전시작전권 이양 문제 등 이견을 조율하는 일만으로도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부족할 정도인데 과연 바이든이 김정은과 마주 앉을 날은 언제나 올지 오리무중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첫 번째 시나리오와는 정반대로 북한의 핵무장이 미국의 안보에 주는 위협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서둘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경우로 상정해 볼 수 있다. 미국이 코로나19의 대처와 인종 간 갈등 치유 등 국내문제에 매몰돼 북핵문제를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섞인 분석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큰 걸림돌이 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분명치 않고 북한을 비핵화로 강하게 이끌려면 중국의 협조가 필요하지만 중미관계가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다.

마지막 세 번째 시나리오는 북한이나 미국이 모두 상대와의 직접 협상보다는 한국을 중재자로 삼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제시하고 싶다. 이 시나리오는 바이든 정부가 새로운 대북정책을 수립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북한도 바이든 정부에 대한 정책을 세우는 데 관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을 전제로 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이 서로 간보기를 하는 시간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고 그동안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미국이나 북한 모두 어느 정도 우리에게 맡겨두려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우리 정부의 이런 노력을 얼마나 존중할지, 또 미국은 어떨지 아직 불확실 한데다 1년 반 전 일이지만 지난해 4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정연설에서 ‘남조선 당국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하지 말라’고 우리 정부를 향해 퉁바리를 준 일이 상기되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도 트럼프 시대 종막에 대해 예상은 했을 것이다.

최근 북한의 미국통 최선희 제1부상이 혁명화 설이 나오며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 아마도 미국의 차기 정부에 대한 연구에 몰두할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떠오르는 바이든 시대에 가장 불안한 인물이 김정은이란 점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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