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중성 문지 세부(북에서)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 2020.11.4
강화중성 문지 세부(북에서)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 2020.11.4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남한 유일의 고려 도성인 강화중성에서 문이 있던 자리가 최초로 확인됐다.

4일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소장 유재은)는 남한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려 시대 도성유적인 강화중성(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소재)에서 문지(門址)를 최초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강화중성은 고려 시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수도를 강화로 천도한 이후 건립한 3개의 성곽(내성-중성-외성) 중 하나다. ‘고려사(高麗史)’ 등 문헌기록에는 1250(고려 고종 37)년에 축조됐고, 둘레가 2960칸이며, 17개의 크고 작은 성문이 있었다고 전한다.

강화중성은 수도 강화를 ‘⊂’ 형태로 둘러싼 토성(土城)으로 현재 확인된 길이는 총 11.39㎞이다. 몽골침략에 맞서 강화도로 천도한 1232(고종 19)년부터 1270(원종 11)년까지인 강도시기(江都時期)에 축조된 성곽 중 당시의 모습을 가장 온전히 간직하고 있어 이 시기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이번 조사는 2019년에 이은 제2차 조사로, 강화중성의 서성벽 구간을 대상으로 했다. 조사지역은 남산(해발 223m) 정상부에서 서쪽으로 약 500m 떨어진 지점으로, 강화도성 서쪽에서 능선을 따라 도성의 중심부인 현 강화읍 관청리 일대로 진입할 수 있는 교통로에 해당한다.

강화중성의 문지는 너비 4.4m, 길이 5.3m로, 내측에는 성문이, 외측에는 보도시설이 설치되었다. 성문은 긴사각형(장방형)의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4개의 기둥을 세워 시설한 것으로 추정된다. 성문 외곽에는 넓적하고 편평한 돌을 경사지게 깔아 보도를 조성하였다. 문지 주변에서는 용두(龍頭)를 비롯한 장식기와와 평기와, 장식철물, 철못 등 문과 지붕 부재로 추정되는 유물도 다량 출토됐다.

한편 조사 당시 문지는 석축담장으로 막혀있는 상태로 처음 확인됐다. 이는 성문 폐기 직후 담장을 쌓아 문지를 폐쇄한 양상으로 보인다. 1259년 몽골과의 화의에 따라 외성과 내성을 훼철(毁撤)했을 때 중성도 같이 파괴됐거나, 1270년 개경으로 환도했던 당시에 중성이 폐기되었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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