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사회에는 ‘부모를 따르자니 사랑이 울고 사랑을 따르자니 부모가 운다’라는 속어가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자식이 사랑하는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긴 해도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그 고뇌의 결정은 무척 어렵고 뒷말이 나오게 마련이다. 결론이 나오더라도 만족한 답일 수 없는 딱한 사정이 아닐 수 없다. 그와 유사한 상황이 현재 더불어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바, 다름 아닌 내년 4월 7일 실시될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후보를 내는 일이다.

현행 민주당 당헌 제96조 제2항에 따르면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다. 이 당헌 규정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당시 당 대표로 있을 때 당 공천으로 당선된 자가 중대한 잘못으로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경우 책임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그에 따라 지금까지 5년 동안 ‘무공천’ 원칙은 철저하게 지켜져 왔던 것이고 정당이 스스로 책임진다는 행위에서 정당의 책임정치가 다소 구현돼 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민주당 사정이 다르다. 우리나라 제1도시, 제2도시인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궐위로 인해 내년 4월 보선이 실시된다. 민주당 당헌에 따른다면 성추행 등으로 직위를 잃은 부산시장 등 2개 거대도시의 시장 후보를 낼 수 없는 처지이니 이 문제에서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잘 지켜왔던 원칙을 저버리고 당헌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물론 당헌 개정은 필요성이 있다면 정당의 대표기관이나 전당원 투표를 통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사안이다.

민주당 당헌 제16조(권한) 제1항에서 당헌 개정과 특별당헌 개정은 전국대의원대회의 권한이다. ‘전국대의원대회는 정당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그 권한의 일부를 중앙위원회에 위임할 수 있다(제2항)’고 규정돼 있고, 전국대의원대회의 소집이 곤란한 경우에는 특별당헌 개정에 있어 그 권한을 중앙위원회에 위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무공천’ 규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정당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중앙위원회가 행할 수 있는바, 당헌 개정 절차를 제대로 지켰다하더라도 ‘무공천’ 규정 개정은 정당성(正當性)이 문제 제기되기에 충분하다.

민주당 일각과 야당에서는 민주당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후보자를 내기 위한 당헌 개정한 것은 어쨌든 ‘원칙을 저버렸다’고 비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 지도부에서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후보를 공천해 ‘시민들의 선택을 받는 것이 책임정치에 더 부합한다’는 논리를 펴왔다. 그런 와중에 보궐선거 후보자 공천이 민주당이 자화자찬하는 ‘책임정치’인지, 아니면 많은 국민들의 지적처럼 ‘책임정치를 배반’하는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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