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쇄살인 ‘이춘재’ 법정 증언… “내가 진범”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교도소에서 자백한 14건의 사건과 화성에서 발생한 10건의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맞는가?” “예 맞습니다.”

1980년대 화성지역을 비롯해 청주지역 일대에서 벌어진 14건의 연쇄살인사건. 해당 사건에 대한 경찰의 재수사 단계에서 자신의 범행임을 자백한 당사자인 이춘재(56)가 2일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변호인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춘재는 이날 수원지법 형사12부(박정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춘재 8차 사건’ 재심 9차 공판에 검찰과 변호인 양측의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집에서 잠자던 박모(당시 13세)양이 성폭행 당한 뒤 살해된 사건을 지칭한다. 인근 농기계 수리공장에서 일하던 소아마비 장애인 윤성여(53)씨가 범인으로 지목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윤씨는 항소하면서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고 밝혔으나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서 윤씨는 20년을 복역하다가 2009년 가석방됐다. 이후 이춘재가 8차 사건도 자신이 벌였다고 자백하면서 윤씨는 영화 ‘재심’의 모델이기도 한 박준영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삼고 지난해 11월 13일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의 불허 결정으로 이춘재의 얼굴 촬영 및 공개는 언론을 통해 이뤄질 수 없었다. 다만 법원은 88석 규모(사회적 거리두기로 44석 운용)의 기존 법정 외에 중계 법정을 추가로 이용해 다수의 방청객이 이춘재의 증언을 방청할 수 있도록 했다.

연쇄살인 1차 사건이 발생한 1986년 9월로부터 34년 만에 일반에 모습을 드러낸 이춘재는 담담한 말투에 비교적 정확한 진술을 했다. 그는 화성에서 발생한 10건의 연쇄 살인사건에 대해 자신이 진범이 맞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면서 범행을 인정했다.

이춘재는 사건을 재조사하기 위해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자신이 복역 중인 부산교도소를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면서 “모든 것이 스치듯 지나갔다”고 말했다. 또 “당시 진술을 거부하려고 했으나 프로파일러 때문에 진술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찰이 교도소로 찾아와 DNA 감정결과 등을 토대로 자신을 추궁했고, 1980년대 화성과 청주에서 저지른 14건의 살인 범행을 경찰에 모두 털어놨다고 말했다.

이춘재가 저지른 사건에 대한 억울한 누명을 쓰고 20년 동안 옥살이를 했던 윤씨는 이춘재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되는 동안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법정에서는 31년 전 실종사건이 자백을 통해 살인사건으로 밝혀진 김모(당시 9세)양 사건(1989년 7월)에 대한 이춘재의 증언도 나왔다.

이춘재는 해당 사건에 대해 “우연히 산에 있는 도로에서 (김양을) 만났다”며 “자살을 시도하다가 못하고 나오는 길에 아이를 만났는데 아이가 놀라 도망갔다. 쫓아가는 상황에서 아이를 안고 산으로 들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춘재는 왜 아이를 납치했는지에 대한 변호인의 질문에 “아이가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도망갔고, 내버려두면 저질렀던 사건이 불거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범행과정에 대해선 “처음엔 범행할 생각이 없었다. 숲에서 한참을 생각하고 있었다”면서 “결박도 한참 후에 했다”고 했다.

이어 변호인이 약 1년 뒤에도 같은 장소에서 여중생을 대상으로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에 대한 이유를 묻자 그는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며 “어디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해야겠다가 아니라 그날 상황에 따라서 마주치는 대상에 따라서 한 것 같다”고 계획범행을 부인했다.

유가족이 아직 사망신고도 하지 못하고 있고 힘들어하는데 유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엔 “사건을 벌이고 간 뒤에 나름 후회도 했는데 자살도 마음먹었는데 하지 못 했다”면서 “모든 분들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