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미 미시간주 워싱턴의 미시간 스포츠 스타 공원 선거유세장에 도착하자 수녀들을 비롯한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미 미시간주 워싱턴의 미시간 스포츠 스타 공원 선거유세장에 도착하자 수녀들을 비롯한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천지일보=이솜 기자] 2016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선 후보는 아이오와주 수 센터에 있는 한 작은 기독교 대학에서 선거유세에 나섰다. 3층 높이의 파이프오르간 앞에 선 트럼프는 “나에게는 가장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뉴욕 5번가 한복판에서 사람을 총을 쏜다고 해도 어떤 유권자도 잃지 않을 것이다.”

당시 트럼프는 그의 압도적 지지층인 백인 복음주의자들을 일컬은 것이지만, 이는 미국 대선에서 후보들의 어떤 스캔들도 그들의 지지자들에게 영향이 없음을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발언이다.

애초에 이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트럼프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된 자체가 후보자의 도덕성과 지지율이 상관관계를 갖지 않고 있음을 대변해준다. 수년 동안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적 윤리성과 성적인 도덕성을 소중히 여기고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의 가치관으로 규정해왔지만 트럼프는 정반대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지금껏 트럼프의 성범죄를 폭로한 여성만 26명이며 이 중 최소 12명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여성의 동의 없이 키스하거나 몸을 더듬었다는 성추행 내용과 유부녀를 유혹하려고 했다는 트럼프의 음성이 담긴 녹음 파일이 공개된 적도 있다.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 조카딸 등 측근들은 회고록 등을 통해 그가 ‘사기꾼, 거짓말쟁이, 인종차별주의자, 깡패, 소시오패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과거사 폭로 또한 누구의 생각도 바꾸지 못했다. 반(反)트럼프 측의 비난만 거세졌을 뿐이다.

작년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 코너로 몰고 갔던 ‘우크라이나 스캔들’이나, 지난 대선에 러시아 정부가 개입하면서 트럼프 당시 후보를 도와줬다는 ‘러시아 스캔들’도 마찬가지다. 작년 수많은 증인들이 청문회에 나와 그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대가성 거래를 확인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에는 의미 있는 변화가 감지되지 않았다.

다만 살인도 무서워하지 않는 트럼프가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치부가 있으니 바로 ‘세금 스캔들’이다. ‘뉴욕 한복판 총격’ 발언은 작년 10월 23일 연방항소법원에서 다시 등장하게 되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세금 신고에 대한 심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현직 대통령은 어떤 종류의 형사 소송에서도 절대 면책특권을 누린다”는 취지로 주장했고, 이에 판사는 변호인단에게 실제 그가 5번가에서 누군가에게 총격을 가했다면 경찰에 체포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답은 ‘아니오’였다.

각종 탈세·절세 의혹에 시달리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4년 전 대선 당시 납세기록 공개를 약속했으면서도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달 뉴욕타임스(NYT)가 2000~2017년에 걸쳐 트럼프 대통령의 소득신고 기록을 분석, 치밀하게 천문학적인 비용을 탈세해왔다고 폭로하자 그는 사실이 아니라며 현재 받고 있는 국세청 조사가 완료되면 세금 기록을 모두 공개하겠다고 다시 약속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고 있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 역시 트럼프 못지않게 많은 스캔들을 맞닥뜨렸다. 지난 4월 타라 리드는 바이든이 상원의원이던 1993년 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NYT에 주장했다. 바이든 의원실에서 사무보조원으로 일했던 리드는 사건 직후 상원에 문제를 제기했으나 오히려 업무에서 배제됐다고 폭로했다. 이후 바이든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된 날에는 바이든의 현재 부인과의 결혼이 불륜으로 시작했다는 질 바이든의 전 남편의 폭로가 이어졌다. 바이든은 모든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의 아들인 헌터 바이든. (출처: ABC뉴스 유튜브 인터뷰 캡처)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의 아들인 헌터 바이든. (출처: ABC뉴스 유튜브 인터뷰 캡처)

바이든에게 가장 큰 치명타는 그의 아들이다. 애초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바이든의 아들 헌터가 우크라이나 기업과 유착 관계가 있음을 입증하려고 트럼프 대통령이 질렌스키 대통령에게 거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 트럼프 성향의 매체 뉴욕포스트는 지난 14일 헌터에 관한 폭로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우크라이나의 가스회사 부리스마측과 부통령 재직 중이던 자신의 아버지의 만남을 주선했다는 단서가 헌터의 노트북에서 발견됐다고 전했다. 트럼프와 공화당은 바이든이 헌터를 내세워 중국과 우크라이나, 러시아로부터 수십억 달러를 유치하고 거액을 받은 부패 스캔들의 중심에 있다며 폭로가 더 확산된다면 바이든 후보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처럼 트럼프와 바이든 모두 지난 대선 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스캔들 속에 있지만 놀랍게도 이들의 지지율은 어떤 의혹에도 크게 영향을 받고 있지 않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CNN방송이 전국 성인 유권자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 오차 ±3.6%)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4년 동안 지지율에 큰 변동이 없었다. 트럼프의 업무 수행에 대한 지지도는 성인 전체와 유권자 모두에게 42%가 나오고 국정 수행을 잘 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각각 55%, 56%를 차지했는데 이는 2017년 트럼프 취임 후 첫 여론조사에서 나온 국정 수행 지지율(44%)과 반대(55%) 응답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트럼프의 스캔들이 폭발적으로 나왔던 지난 1년 동안에도 이런 숫자들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CNN이 2019년 10월부터 실시한 12개 여론조사 중 하나를 제외하고는 트럼프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40~45%를 유지했다. 반트럼프 진영의 바이든 지지율 역시 마찬가지다.

치명적인 스캔들 속에서도 유권자들의 표심이 크게 변하지 않는 데는 미국 정치가 극단적으로 분열된 상황을 꼽을 수 있다. 양 진영 간의 갈등이 그 어느때보다 크기 때문에 스캔들을 보도하는 매체의 보도를 ‘가짜뉴스’로 여기고, 자신이 속한 측의 주장이 아니면 큰 관심을 두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권자들은 당초 후보들의 도덕성에 크게 기대를 하지 않는 양상이다. NYT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모순에 대해 “순전히 거래에 의한 것”이라며 “그들은 그(트럼프)를 수십년 만에 합법화된 낙태를 끝낼 수 있는, 보수 성향의 대법관을 대법원에 임명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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