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찰견(寺刹犬)의 선택

이기선

 

덕을 쌓아 내세엔 사람으로 태어나라며

스님은 자고 있는 개를 쓰다듬는데

부스스 일어나더니

도리질을 친다.

 

[시평]

요즘은 100세 시대니 뭐니 하여, 사람들이 전에 비해 참으로 오래 산다. 이렇듯 오래 살다보면 언젠가 150세 시대가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사람의 수명이 늘고 늘어나서, 지금보다도 수십 년을 더 사는 시대가 머잖아 우리의 현실로 도래할 것이다. 이렇듯 오랫동안 살아가면서 좋은 일만 있다면, 참으로 얼마나 좋겠는가. 살아가면서 궂은일, 슬픈 일, 가슴 아픈 일 등 수많은 일들을 겪지 않는 삶이란 없다. 그러므로 그러한 삶 속에서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 가슴앓이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러함이 우리네 인생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한 일 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서로 속이고 또 배반하고, 그러므로 받아야 하는 마음의 상처가 참으로 우리네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사람이기 때문에 거짓말도 하고 또 속이기도 하고 배반도 한다. 만약에 짐승이었다면, 거짓도 속이는 것도, 또 배반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본능에 의해 으르렁거리고 싸워서 육체적인 상처는 받을 수 있어도, 사람들 마냥 마음의 상처를 입는 일은 짐승들 사이에는 결코 없을 것이다.

가을 햇살 밝게 떨어지는 불당 앞에서, 스님이 사찰에서 키우는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 덕을 많이 쌓아 내세에는 사람으로 태어나 행복하게 살아라” 하시니, 개가 부스스 일어나더니, 온몸으로 도리질을 친다. “아이고 서로 속이고 속여 마음의 상처를 주고, 또 거짓말하여서 구덩이로 떨어뜨리고, 배반해서 가슴에 대못을 박는 삶이 사람들의 삶인데, 어찌 저에게 내세에는 그런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하십니까?.”

개는 온몸으로 도리질을 치고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온종일 햇살 잘 드는 곳, 한적한 자리에서, 가급적이면 사람들도 오지 않고, 간간이 바람이나 놀러와 한 자락 자리를 깔아주기도 하고, 때로는 곤충들이 날아와 서로 윙윙거리는 자리. 그런 곳에서 그저 맘 편히 넙죽 배 깔고 누워 한숨 낮잠이나 청한다면, 이게 바로 족한 삶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