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베토벤 교향곡(交響曲)의 휘날레를 장식한 곡이 바로 환희의 노래로 널리 알려진 교향곡 9번 ‘합창’이라 할 수 있는데 전곡(全曲)이 1사간 넘게 구성되었을 정도로 그 분량이 방대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베토벤은 이 곡을 완성한 이후 1824년 5월 7일 초연(初演)할 때 직접 지휘까지 하였는데, 당시에 그의 청각 상태가 완전히 상실되었기 때문에 웅장하고 장엄한 합창의 전곡이 끝난 이후 청중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를 처음에는 듣지 못하다가 한 여가수가 나와서 그의 손을 잡아 청중 쪽으로 돌아서게 한 이후에야 그 박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거슬러 올라가서 베토벤이 교향곡 속에 환희의 송가로 널리 알려진 곡을 작곡하게 된 것은 1793년부터 라고 알려졌는데, 그것은 베토벤이 피센니히에서 샬로테 실러에게 보낸 편지에 소개되어 있는데, 쉴러의 시는 이미 1785년에 완성되어 있었다.

한편 베토벤이 곡을 붙인 합창의 테마는 이미 1808년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위한 환상곡’ 및 1810년의 괴테의 시 ‘작은 꽃, 작은 꽃잎’에 작곡한 중에 나타나 있다.

교향곡 9번의 악기의 모티브 몇 개는 이미 1815년 전에 나타났던 것이며, 결국 ‘환희의 노래’의 결정적인 테마는 이 교향곡의 다른 곡들과 마찬가지로 1822년에 작곡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베토벤은 교향곡 9번에 환희의 노래를 넣는 것을 처음에는 확실히 결정하지 못하고 앞으로 곡을 쓰게 될 10번 교향곡이나 11번 교향곡으로 미룰 생각이었다.

본래 교향곡 9번이 합창이 동반된 교향곡이란 제목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환희의 노래 합창을 종곡(終曲)으로 한 교향곡이란 제목으로 나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베토벤은 교향곡 9번이 완성되기 전해인 1823년 7월까지만 해도 기존과 같이 기악(器樂)으로만 된 종곡을 붙이려고 생각하였는데, 그 이유는 교향곡 안에 합창곡을 넣는 것이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토벤은 사람의 노랫소리를 오늘날의 작품과는 다른 형식으로 그리고 다른 대목에 넣으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였으며, 아다지오 제2멜로디 초안에 그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아마도 합창은 여기에 넣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오케스트라와 작별하는 문제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였는데 그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하나의 악상이 마음속에 떠오르면 나에게는 그것이 악기의 소리로 들리지, 결코 사람의 목소리로는 들려 오지 않는다.”

같이 베토벤은 사람의 목소리를 사용하는 것을 가능한 미루고 종곡의 레치타티보만이 아니라 환희의 테마까지도 기악으로 연주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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