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거인(巨人)이 떠났다. 1993년 프랑크푸르트 회의석상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강연으로 삼성의 근본체질을 바꾼 이건희 삼성회장은 큰 사람이었다. 그런 거인이 두 번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늘 무표정에 가까운 그가 2008년 7월 1일 삼성 재판과정에서 첫 눈물을 보였다. 아들 이재용 전무와 같이 재판정에 선 터였다. 그러나 눈물은 아들 때문이 아니었다. 재판부는 “삼성 계열사 가운데 특별히 중요한 회사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전 회장은 자신 있게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삼성전자 제품 가운데 11개가 세계 1위고, 세계 1위는 정말 어려운 일이며 그런 회사를 또 만들려면 10년, 20년이 걸려도 힘들 것이라면서 순간 울먹였다. 글로벌 명품 기업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험난한 길을 걸어왔는지가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또 한 번의 눈물은 2011년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을 발표하는 순간이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일등공신으로 꼽힌 이 회장은 1년 반 동안 11차례 출장길에 올라 170일 동안 해외에 체류했다. 지구 5바퀴 거리를 다니며, 110명의 IOC 위원 중 만나지 않은 위원이 없을 정도로 동계올림픽 유치에 혼신의 힘을 쏟았고 마침내 결실이 맺히는 자리에서 눈물을 보인 것이다.

이 회장의 첫 눈물은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발전시키기까지 세상의 편견과 직원들의 안일주의와 싸우며 사투를 벌여온 오너의 맘고생이 읽힌다. 맘고생을 한다해서 다 초일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승부사 기질과 혁신 의지가 결국 ‘명품 삼성’을 일궈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그의 발언은 글로벌 삼성의 초석이 되고 유산이 됐다.

삼성이라는 한 기업의 변화가 국민과 국가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해서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요즘 정치권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다 바꿔야 하는 곳이 정치권이 아닌가 싶다. 발전하고 변화하는 기업이나 지도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철저히 드러내고 인정하면서 변화를 꾀한다. 그러나 거대 여당을 일군 문재인 정권은 드러난 일마저도 감추기 급급하다. 열성 지지자를 대상으로 국정운영을 하면서 ‘선한 권력’이라는 착각에 빠져 오만하기 그지없다.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인들의 생각을 싹 바꿀 이건희 같은 정치 거인(巨人)이 대한민국 정계에도 출현하길 참으로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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